프랑스 가톨릭 신자 43% “교황 사임했으면 좋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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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에 대한 세계인의 반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가톨릭 내부에서조차 세상 순리에 따른 사목보다 지나치게 원전에만 집착하는 스타일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사랑과 포용을 강조했던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대비되면서 그에 대한 실망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가톨릭 국가들이 몰려 있는 유럽 각국에서도 그의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아프리카 순방을 마치고 23일(현지시간)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양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올해 초 아홉 살 된 브라질 소녀가 성폭행을 당했다. 가톨릭 신자인 소녀의 부모는 낙태 시술을 받게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에서 신자가 가장 많은 브라질의 가톨릭교회는 소녀의 부모를 파문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당시 결정이 로마 교황청의 승인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교황에 대한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프랑스 가톨릭교회 신부들은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 등에 대해서는 선택적인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교황청의 결정 사항에 대해 개별 국가의 가톨릭교회가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베네딕토 16세는 “브라질이 낙태 금지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최근 아프리카를 방문한 자리에서 “콘돔이 오히려 에이즈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마 교황청은 산아 제한을 금지하고 있어 콘돔 사용을 막고 있지만 에이즈로 인해 고통받는 아프리카에서 이 같은 발언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왔다.

프랑스 외교부가 “교황의 발언은 공공 보건정책은 물론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한다”고 비난했고, 독일과 벨기에 등 유럽 각국 정부도 비난 성명을 냈다.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도 교황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최근 프랑스 가톨릭 신자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 43%가 “교황이 사임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7%가 “교황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주간지 르푸앵은 “역대 265명의 교황 가운데 중도 사임한 경우는 셀레스티나 5세 등 4명에 불과하다”며 사임 가능성이 크지 않음을 시사했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즉위 직후부터 구설에 휘말려 왔다. 그는 2006년 “마호메트가 가져온 새로운 게 무엇인지를 보여 달라고 한다면 사악하고 비인간적인 것들만 발견할 것”이라고 말해 이슬람 국가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2007년에는 “가톨릭만이 진정한 기독교”라고 밝혀 개신교 신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교황청은 그때마다 해명 또는 사과했지만 곱지 않은 시선은 이어졌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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