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G 임직원 “보너스 자진 반납”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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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을 비롯한 뉴욕 월가와 유럽 금융회사 임직원이 보너스·스톡옵션을 속속 반납하고 있다. 정부에 손을 벌린 부실 금융회사 임직원이 국민 세금으로 돈잔치를 벌일 수 있느냐는 정부·여론의 전방위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 월가와 유럽의 다른 은행으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AIG를 겨냥해 미 하원이 보너스에 중과세하는 법안까지 통과시키자 “여론을 등에 업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보너스·스톡옵션 반납=앤드루 쿠오모 뉴욕주 검찰총장이 23일(현지시간) “AIG로부터 보너스를 많이 받은 상위 20명 중 15명이 회사에 보너스를 반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뉴욕 타임스(NYT)·월스트리트 저널(WSJ)·BBC 등 외신이 전했다. 쿠오모 총장은 “보너스를 반납한 사람의 신변 안전을 고려해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반납을 약속한 액수는 AIG가 보너스로 지급한 1억6500만 달러 중 5000만 달러다. 쿠오모는 “보너스 중 미국인에게 지급한 8000만 달러는 다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8500만 달러는 외국인에게 지급된 것이어서 현재로선 회수할 법적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NYT에 따르면 런던의 AIG 영국법인에 소속된 두 명이 보너스를 자진 반납하기로 했다.


앞서 22일에는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은행 경영진 4명이 스톡옵션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20일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이 스톡옵션을 주는 것은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파렴치한 행위”라고 비판한 데 따른 것이라고 파이낸 셜타임스(FT)가 전했다. 사르코지의 발언 후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경제장관도 “정부 지원을 받은 은행 임원은 스톡옵션을 자진 반납하라”고 거들었다. 이로 인해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프랑스의 다른 5개 은행도 경영진에 스톡옵션을 주기 어렵게 됐다.

그러자 23일에는 네덜란드 ING그룹도 1200명의 고위 임직원에게 보너스 반납을 요청하고 나섰다. 잰 호멘 ING 최고경영자(CEO)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얼마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고객과 시장에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ING는 지난해 10월 첫 분기 손실을 발표한 이후 1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약 4만 명의 직원에게 3억 유로가량을 보너스로 지급해 논란을 빚었다.

◆“포퓰리즘” 반론 제기=AIG가 보너스 지급을 발표한 다음 날인 16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AIG의 결정을 비난하며 “모든 수단을 강구해 보너스를 회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여론도 극도로 악화됐다. 그러자 미 하원은 19일 부실 금융회사가 임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면 최고 90%의 세율로 세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적자금을 50억 달러 이상 받은 금융회사와 연봉 25만 달러 이상 임직원이 대상이다. 상원은 한술 더 떴다. 세율은 최고 70%로 낮추되 공적자금을 1달러라도 받은 금융회사는 모두 과세 대상이 되도록 했다.

그러나 “의회가 금융회사 보너스까지 간섭하는 것은 지나친 포퓰리즘”이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변호사인 오바마도 22일 CBS방송의 시사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하원의 과세법안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또 “세금을 특정 계층에 대한 징벌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모두가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NYT·WSJ·포춘 등 미국 언론도 의회 움직임을 비판하고 나섰다. 포춘은 24일 의회가 추진 중인 과세법안의 부작용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포퓰리즘을 경계했다. 이미 지급하기로 계약한 보너스를 사후에 법을 만들어 회수하는 것은 ‘소급 입법’을 금지하는 미국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이 필요 없는데도 억지로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회사까지 규제하는 건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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