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오케스트라 어디로]3.감동사라진 '서커스무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오케스트라는 덩치만 커서 돈만 많이 드는 '음악의 공룡' 은 아닌가.

옛날에 비해 클래식 청중도 늘어나고 음반 판매량도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청중개발에 성공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30여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교향악단 단원들은 연간 6개월동안 연주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부업전선으로 나서야 했다.

연봉도 4천달러 (약3백60만원)에 불과했다.

지금은 정기휴가를 제외하고는 연중 무휴로 계속되는 시즌으로 바쁘다.

일요일도 쉬지 못하고 공연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연봉은 많이 올랐다.

미국에서 10위권 내에 드는 휴스턴심포니의 경우 단원의 평균연봉은 올해 6만7천달러 (약6천만원) . 현재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어느 나라없이 음악적 성취감보다 보험.연금.시간외 수당등 처우개선에 관심이 더 많다.

다른 제조업체의 노동조합원처럼 연주와 리허설을 거부하고 파업도 불사한다.

악장이나 수석급 단원들은 마치 프로야구 선수처럼 조건이 좋은 오케스트라를 쫓아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면서 연주하는 단원들은 별로 없다.

아무리 훌륭한 지휘자라도 약속된 연습시간을 넘기면 단원들로부터 비난받기 십상이다.

미국의 한 평론가는 미국의 어느 오케스트라의 유럽 순회공연을 따라 나섰다가 단원들이 호텔.관광 스케줄.리허설 시간에 대해 불평을 터뜨리는게 민망스러워 도중에 짐을 싸서 귀국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조직이 워낙 비대한 나머지 단원 개인이 음악적 노선에 대한 발언권을 가지기가 극히 어렵다.

그래서 단원들은 음악적 성취감을 얻기 위해 실내악 활동으로 눈을 돌린다.

베를린필·뉴욕필·빈필·빈심포니 등 세계 굴지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시즌 틈틈이 실내악앙상블을 만들어 세계 순회공연을 다니곤 한다.

빈심포니 단원들의 경우 실내악단을 무려 11개나 조직해놓고 있다.

실내악 연주로 자리를 비우는 단원들이 많아 경영진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오케스트라를 '공장' 이라고 부르는 극단론자들까지 나올 정도로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 고착화 현상은 심각하다.

현대음악은 리허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청중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오케스트라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다.

이렇게되자 작곡가들까지 오케스트라 대신 소규모 체임버 앙상블이나 전자음악.컴퓨터음악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대음악은 오케스트라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오케스트라는 현대음악 없이는 '박물관' 으로 전락하고 만다는데 있다.

당장은 좀 힘들더라도 새로운 작품으로 청중을 '교육' 시키지 않으면 결국 자멸 (自滅) 하고 말 것이다.

미래의 오케스트라는 다양성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종의 '음악은행' 이 되어야 한다.

상주 (常駐) 작곡가 제도의 도입도 각 교향악단이 시도하고 있는 일종의 대안이다.

오케스트라 단원과 호흡을 함께 하면서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경험을 축적하는 일은 작곡가나 교향악단 모두에게 유익한 경험이 된다.

97 그래미음반상 클래식 부문에서 3관왕을 차지한 작곡가 존 코릴리아노 (59) 도 시카고심포니의 상주작곡가 출신이었다.

루카스 포스.펜데레츠키를 비롯,에사 페카 살로넨 (LA필 상임지휘자).마이클 틸슨 토마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상임지휘자) 처럼 지휘자를 겸업하는 작곡가들이 늘어나는 것도 작품 연주기회에 대한 희망으로 볼 수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