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AP 전화받은 사람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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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下)이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선일씨 피살사건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조용철 기자]

외교통상부가 김선일씨 피랍 사건 여부를 문의받고도 이를 '묵살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한국 교민의 생명이 걸렸던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에 따라선 외교부에 거센 후폭풍도 예고된다.

일단 외교부는 24일 AP통신이 이달 초 한국인 피랍 여부를 물어왔다는 보도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AP통신은 이날 답변을 보내 "서울에 있는 AP 기자가 외교부에 이름이 '김선일'로 들리는 한국인이 실종됐는지를 전화로 문의했다"고 공개했다.

이라크 내 한국 교민은 60여명에 불과하다. 교민 숫자로 본다면 김씨 실종 확인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록 당시 AP 기자가 김씨가 찍힌 비디오테이프의 존재나, 테이프에 나오는 김씨 생년월일과 이라크 입국 시기 등 구체적인 신상 정보를 당국에 전달하지 않았다 해도 외교부가 교민 실종이나 납치 가능성을 묵살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AP 기자가 외교부에 문의한 시점은 김씨 피랍이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됐던 21일보다 18일이나 앞선 이달 3일이다. 정부가 즉각 점검에 나서 실종 여부를 확인했다면, 이후 보다 많은 시간을 갖고 석방 협상에 나설 수 있었다는 비난이 제기될 수 있다.

특히 납치단체가 24시간에 불과한 협상 시한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김씨가 근무했던 가나무역의 김천호 사장이 납치 사건 발생 이후인 이달 1일, 7일, 10일, 11일 네 차례나 현지 대사관을 방문한 것도 의문이다. 김 사장이 현지인 직원들을 통해 김씨 행방을 수소문하고, 주민 첩보로 김씨가 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때였다.

그러나 외교부는 "당시 김 사장은 업무 협의차 대사관을 찾았을 뿐 전혀 피랍을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외교부도 이 같은 묵살, 사전인지 은닉 의혹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신봉길 대변인은 이날 이례적으로 AP통신을 상대로 강경한 외교부 분위기를 전했다. AP 기자가 전화한 사실이 있다면 누구에게 무엇을 질문했는지 명쾌하게 공개하라는 촉구다.

특히 외교부는 이번 AP통신의 '피랍 사전 문의' 보도가 한국민의 생명과 직결돼 있던 중대 현안인 만큼 사실 여부를 확인해 AP 측에 따질 것이 있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겠다는 입장이다.

AP통신은 답변에서 "AP 기자는 한국인 실종 여부를 독자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비디오테이프를 (외교부 당국자에게)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납치로 확인되면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사안인데도, AP통신 측에서 비디오테이프의 존재 여부를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은 것은 언론 윤리와 책임 논란을 만들 수 있는 대목이다.

채병건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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