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은 테마]얼굴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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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벌써 20년전의 일이다.

내가 백화점에 들를라치면 점원이 영락없이 일본말로 어서 오라는 것이었다.

얼굴은 개인의 신분증명서요 유전자 광고판이다.

개인 정보의 집합이다.

성별.나이.성격.건강상태.정서상태.교양정도, 심지어는 운명까지도. 그때만 해도 주 고객이 일본인 관광객이었긴 했지만, 3백년 종가집의 토종 한국인인 나를 일본인으로 보는데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 한국인 얼굴은 어떤 것인가.

일본인과는 어디가 얼마만큼 다른가.

다르다면 어디가 얼마만큼 다르며, 이 둘은 어떻게 다른가.

여러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마침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공부를 하고 있던 끝이라, 좀 과학적인 방법을 빌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체질인류학적으로 한국인의 얼굴 생성에 대한 비밀을 풀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한국인 얼굴을 알려고 하니 주변의 다른 민족과도 비교해 보아야 했다.

그래서 일본인.중국인.태국인을 시작으로 태국 고산족을 비롯 중앙아시아.이집트.터어키.그리스.이탈리아.영국.네델란드인, 그리고 옛사람들의 흔적을 알기 위하여 아이누.오키나와인도 찾아보아야 했다.

이왕 가는 김에 전 촉각을 곤두세워 그 나라 민족의 미술은 물론 음악.무용을 얼굴과 관련시켜 생각해 보니 뭔가 짚히는 것이 자꾸만 쌓여간다.

같은 민요라도 남도민요는 목놓아 부르고 서도민요에 콧소리가 있는 까닭은 위턱이 큰 호남인, 코허리가 높은 평양도인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고,가야금이 남쪽에서 거문고가 북쪽에서 발달한 까닭도 그렇구나 싶은 증거들이 나오는 것 같다.

한국인의 얼굴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얼굴이 변화하고 있는 한 내 연구도 끝이 있을 수 없다.

죽을 때까지 할 일이 보여서 좋다.

다만 신세대 얼굴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이 변화를 따라 잡으려니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이 문제다.

조용진 <서울교대 미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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