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새 헌법 만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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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대만에서 신헌법 제정운동이 시작됐다. 대만독립건국동맹의 황자오탕(黃昭堂.69)주석은 24일 "7월 1일 타이베이(臺北)시에서 '대만제헌운동 선언대회'를 열고 전국적인 신헌법 제정운동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운동의 리더는 독립추진단체인 타이롄(臺聯.대만단결연맹)을 이끌고 있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천수이볜(陳水扁)총통을 대신해 그의 정치적 아버지인 리 전 총통이 총대를 메고 나선 형국이다.

◇신헌법 제정 때까지 투쟁=황 주석은 "현행 헌법의 70% 이상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2300만 대만인들을 위한 헌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정이 아니라 제정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계획도 확정됐다. 7월 1일 타이베이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연 뒤 심포지엄.해외홍보.지방순회집회 등을 통해 새 헌법 제정의 필요성을 널리 알릴 예정이다.

◇천 총통의 미묘한 입장=천 총통은 지난해 9월 "2006년 주민투표에 의해 헌법을 제정하고 2008년 새 헌법을 발효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취임연설에서 천 총통은 신헌법 제정에서 헌법 개정으로 한발짝 물러났다. 독립파들은 즉각 반발했다. 그러나 독립파의 영수격인 리 전 총통은 "천 총통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것"이라며 그를 감쌌다.

◇제헌인가 개헌인가=천 총통은 최근 "헌법 175개 조항 가운데 최소한 111개 조항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정도의 개정이라면 차라리 제정에 가깝다. 그래서 천 총통이 개정을 앞세우지만 사실상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야당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1948년 국민당 정부가 대륙에서 만든 현행 헌법은 사실 엉터리 투성이다. 티베트에서 선출된 입법의원이 버젓이 존재하고, '몽골 내 각 연맹의 지방자치제도는 법률로 정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개헌은 용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5권분립(입법.사법.행정.감찰.고시)체제의 유지 여부와 총통제냐, 내각책임제냐의 선택도 걸려 있다.

◇제헌의 핵심은 국호=개헌.제헌의 최대 쟁점은 국호다. 현재 대만의 정식 국호는 중화민국이다. 천 총통은 취임연설에서 국호 변경을 얘기하지 않았지만 국호를 바꾸겠다는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최근 뤼슈롄(呂秀蓮)부총통은 새 국호로 '대만중화민국'을 제시했다. 외교부 일각에서는 '중화대만공화국'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대만인 상당수는 '대만공화국' 혹은 '대만국'을 선호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호 변경은 극히 민감한 문제다. 중국의 무력침공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헌론의 배경에는 정치적 계산도 엿보인다. 타이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외신과 만난 자리에서 "대만 신헌법운동을 통해 독립 열기를 한껏 올린 뒤 올 연말 입법원 선거에서 집권 민진당과 함께 압승하겠다는 게 지도부의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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