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관 기자의 병원 1박2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외과 노성훈 교수와 함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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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수술을 하고 있는 노성훈 교수. 그의 뒤로 2명의 일본인 교수가 수술을 참관하고 있다. 왼쪽부터 다섯번째가 노 교수. [안성식 기자]


암 덩어리를 잘라내 기선을 제압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암 역시 1차 저격수는 외과 의사들이 맡는다. 연세대 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노성훈(55) 교수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의사다.

그는 암세포가 복강까지 침범한 4기 환자라도 가차 없이 배를 열고 암과 정면 승부를 벌인다. ‘병원, 1박2일’ 팀이 그의 하루 일과와 수술실을 지켜봤다.

1 오전 6시30분, 출근하는 노 교수.

지난달 12일 오전 10시15분, 신촌세브란스병원 수술 대기실. 노 교수가 이날 두 번째로 수술할 환자를 만난다. “한잠 자고 나시면 수술이 끝나요. 통증도 심하지 않고, 콧줄이나 심지(옆구리에 꽂는 드레인)도 달지 않아요. 내일이면 일어나 걸으실 거예요.” 굳어 있던 이모(54)씨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진다.

오후 1시. 소독약으로 손을 빡빡 문지른 노 교수가 두 팔을 쳐들고 수술실로 들어서자 간호사가 수술 장갑을 끼워준다.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인 갖가지 수술용 기구들이 잠시 후 그가 치러야 할 암과의 전투를 예고한다. 환자의 배는 이미 열려진 상태. 수술실에 긴장이 감돈다.

“암이 어디 있지요?”

노 교수가 보조의사에게 환자를 다시 확인한다.

“위 상부입니다. 진행성 암인 듯합니다.”

“만져져요?”

“잘 만져지지 않습니다.”

“복막이나 간에 전이됐어요?”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다행이네요. 4기는 아니니 희망이 보이네요. 음악 좀 틀어주시겠어요.” 간호사가 준비했던 7080 노래를 틀자 해바라기의 ‘사랑의 눈동자’가 감미롭게 흘러나온다.

“제가 긴장하면 다른 사람은 더 긴장해요. 편한 마음으로 수술했을 때 결과가 좋거든요.” 수술방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위 전체를 들어내는 ‘위전절제술’이 시작됐다. 위와 십이지장을 잘라내고 식도와 소장을 연결하는 대수술이다. 잘린 십이지장의 한쪽은 다시 소장에 이어 붙여야 한다.

그의 수술은 네 가지 면에서 기존 방법과 다르다. 첫째는 짧게 절개한다. 위암 수술 시 배꼽 아래까지 30㎝ 정도 피부를 째지만 그는 15㎝만 열고서도 자른 위를 제거한다. 수술 창이 짧으면 수술 후 탈장이나 장유착·감염의 기회가 줄어든다.

둘째는 배 옆구리에 드레인을 박지 않는다. 수술 과정에서 조직을 자르고 태우다 보면 세포가 파괴되면서 복강 내에 물이 고이게 마련. 드레인은 이를 배출하기 위한 조치다. 그가 드레인을 달지 않는다는 것은 조직 손상을 최대한 줄일 정도로 수술이 정교하다는 의미다.

셋째는 콧줄(비위관 튜브)을 달지 않는다. 코에서 위까지 연결된 콧줄은 장에 생긴 가스·분비물 배출용이다. 근육의 결을 따라 시행되는 정교한 절제, 그리고 장을 정확하게 이어준다면 콧줄이 필요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 기존의 상식을 깬 것이다. 콧줄을 달지 않으면 장 운동이 빨라지고, 장 마비 증상이 줄어드는 등 환자의 불편이 사라져 회복이 빠르다는 것. 실제 그의 환자 대부분이 위를 절제한 다음 날 걷기를 시작한다.

넷째는 수술 시간이 짧다. 3∼4시간 걸리는 위암수술을 그는 2시간이면 끝낸다. 종래 혈관을 태우는 등 지혈 목적으로 사용하던 전기소작기를 절개, 조직 박리, 림프절 제거에 적절히 사용한다.

2 이날 두 번째 수술을 받을 환자를 찾아가 격려하는 노 교수. 3 오전 10시 30분 수술실 식당에서 5분 만에 점심식사를 마친다. 4 오후 5시 회진을 돈다. 환자의 웃음에 피로가 날아간다.


위암과 사투를 벌이는 노 교수 뒤로 두 명의 의사가 접근해 시술을 유심히 지켜본다. 일본 나고야 후지타 의과대학에서 온 외과 교수들이다. 1년에도 40∼50명의 외국 의사가 그의 수술을 참관한다.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그의 암 치료 성적을 직접 확인하고 수술 방법을 보기 위해서다.

드디어 환자의 몸에서 위가 분리돼 테이블 위에 놓인다. “3×4㎝의 진행성 위암입니다. 원래 위벽은 얇아야 하는데 암세포가 침윤돼 두꺼워졌습니다. 주변의 림프절이 커져 있는 걸로 봐서 3기 정도로 의심됩니다.” 수술포에 싸인 암조직은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 가족에게 보인 뒤 해부병리로 보내진다.

이제는 장을 잇는 일만 남았다. 그는 장문합기로 능숙하게 식도와 소장을 잇고, 소장에 십이지장을 이어 나갔다. 시계가 오후 1시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술 두세 시간 동안에 모든 게 결정됩니다. 환자나 의사에게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지요. 의사는 천재가 아닙니다. 내가 환자에게 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가 수술실을 떠나며 한 마지막 말이다.

고종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노성훈 교수의 위암 예방 지침

위암 환자의 60%가 한·중·일 등 극동아시아에 몰려 있다. 짜고 매운 음식, 높은 헬리코박터 감염률 탓이다.

암 예방을 위해선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금을 줄이고 탄 음식, 염장식품을 식단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것. 대신 신선한 채소와 과일, 우유와 두부와 같은 단백 식품, 비타민 A·C·E 등이 함유된 식품을 자주 먹도록 해야 한다.

위암을 조기 발견하기 위한 정기검진도 권했다. 40세 이후부터 위암 발생이 급증하므로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나 만성 위축성 위염 환자, 위 절제술을 받은 사람은 매년 1회, 그렇지 않으면 2년에 한 번 검사를 받는다.

특히 소화기 증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소화가 안 되고, 상복부 통증이 1~2주 계속되면 반드시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최근 들어 위암도 서구화하고 있다. 노 교수는 “과거엔 암이 위의 하부에 발생했지만 점차 상부 암이 늘고 있다. 하부 암은 나쁜 식생활과 관련 있지만 상부 암은 흡연과의 관련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조기 위암 발견율이 15%에서 50%로 늘었지만 전절제가 증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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