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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빗물탱크 만드는 게 큰 댐보다 낫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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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22면

빗물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서울대 한무영(53사진) 교수는 “빗물은 하늘이 공짜로 내려준 돈 줄기”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현재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과 국제물협회(IWA) 빗물 모으기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내에서 빗물 관리 시스템이 가장 잘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자양동의 주상복합빌딩인 ‘스타시티’, 서울대 기숙사와 연구동의 빗물 저장 시스템, 수원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레인시티’가 모두 한 교수가 주도한 빗물 관리 프로젝트다.

‘빗물 박사’ 한무영 서울대 교수

그는 빗물만 잘 관리해도 홍수와 가뭄의 악순환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름철 장마 때 비가 많이 내리면 넘치기 전에 우선 흘려 보내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기지만 이를 잘 보관했다가 물이 부족한 시기에 꺼내 쓰면 된다는 간단한 이치를 따르자는 것이다. 한 교수를 만나 빗물의 중요성과 효과적 저장법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한 교수와의 일문일답.

-왜 빗물인가.
“빗물은 돈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다. 빗물을 모아 잘 이용하면 물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 빗물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것은 돈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빗물의 가치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식수로 사용하는 물은 댐에서 끌어온다. 댐에 모인 물이 복잡한 처리 과정과 경로를 통해 각 가정에 식수와 생활용수로 공급된다. 댐 관리비를 비롯해 정수비·수송비 등 각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 댐에 저장된 물은 곧 빗물이 모인 것 아니냐. 돈이 들어가는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빗물을 직접 모으면 비용을 그만큼 아낄 수 있다.”

-빗물에 대한 선입관이 있는 것 같다. 산성비에 대한 걱정도 있는데.
“괜한 걱정이다. 서울에 내리는 비의 PH는 4.5 정도다. 콜라가 2.5, 오렌지주스가 3.0 정도인 사실에 비춰 보면 강산성이 결코 아니다. 더구나 빗물을 받아 2~3일 두면 PH 7.0~7.5로 산성도는 더 낮아진다. 빗물을 모아 둔 댐을 가리켜 산성 댐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빗물을 받아 음료로 바로 사용할 순 없지만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종종 상수도가 오염돼 다이옥신이나 페놀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빗물엔 그런 독성 물질이 없다. 호주 콴타스 항공사처럼 승객들에게 빗물 생수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는 홍수와 가뭄이 유난히 잦은 편인데 빗물 모으기로 이런 문제의 해결이 가능할까?
“우리나라의 연 강수량은 평균 1300㎜로 비가 많이 내리는 축에 속한다. 하지만 여름엔 집중호우로, 겨울엔 극심한 가뭄으로 빗물의 양극화가 유독 심한 나라다. 우리는 1276억t의 빗물 중 지하수·댐수·하천수로 단지 26%만을 사용하고 나머지 400억t 정도는 모두 바다로 흘려 보낸다. 바다로 흘러가 낭비되는 빗물 중 5~10%만 잡을 수 있어도 가뭄을 해결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대책 없이 빗물을 버리고 나면 정작 필요할 때는 물이 없는 현상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각 가정에서부터 빗물 모으기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최근 공공기관 건물에 빗물 저장과 이용시설의 설치를 의무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공공기관 건물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은 전체 강수량의 0.01%도 안 된다. 그나마라도 빗물 저장 시스템을 갖추도록 유도하는 것이 긍정적이긴 하지만 ‘정부 비’만 모아서는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일반 주택과 빌딩·운동장·논밭·도로 등에 떨어지는 ‘일반 비’를 모아야 효과가 나타난다.”

-빗물을 잘 모으기 위해 어떤 시설과 방법이 필요한가?
“기존에 지어진 아파트·연립주택 등에 규모가 작더라도 빗물 탱크(빗물 저금통)를 설치해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을 홈통으로 유도해 모으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설치 비용이 많이 들거나 거창한 시설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새로 짓는 건물에는 건축 과정에서 건물 지하를 조금만 더 파 내 빗물 저장 탱크를 만들어 놓으면 된다. 도로에 떨어지는 빗물도 하수도를 통해 그냥 흘러가지 않도록 하수도 중간에서 빗물을 가로채는 간단한 시설물을 만들면 된다. 인위적인 물탱크를 만드는 것 외에 쓰지 않는 논에 턱을 만들어 물을 모으는 방법도 있다. 산악 지형에서는 경사면에 눈썹 모양으로 흙을 약간 돋아 두어 빗물이 고여 땅에 스며들게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빗물을 모아야 한다는 ‘오목 마인드’를 갖는 것이다. ”

-댐을 더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꼭 필요한 곳에는 댐이 있어야겠지만 이미 지을 곳에 다 지었다. 꼭 큰 댐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미니 댐을 많이 만들자는 거다. 가정집 정원에 빗물을 모을 수 있도록 웅덩이 형태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미니 댐의 개념이다. 미니 댐은 작지만 그 숫자만 많으면 훨씬 적은 돈으로 거대한 댐보다 더 훌륭한 역할을 한다. 지자체들은 빗물 저장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각종 인센티브나 설치 보조금 지급, 사후 관리 등 행정의 묘를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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