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보기]서울대 김윤식교수 집…저녁노을 스미는 감미로운 분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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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눅진한 책냄새가 먼저 사람을 맞는 집. 묵향인양 은은하게 코끝을 감싸는 그 향기는 이상하게 사람을 진정시키는 힘이 있다.

현대적 감각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공간이 주는 시각적 쾌감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날카로운 필치로 한국문단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그 품안은 큰 나무의 그늘처럼 아늑할 것 같은 문학평론가 김윤식 (金允植.서울대 국문학) 교수. 그의 집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도 주인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10년째 살고 있노라는 그의 집은 한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강변아파트.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서재에서 그는 거의 하루를 보낸다.

오래 사색하고, 많이 읽고, 왕성하게 쓰기로 정평이 난 그에게 이곳처럼 적당한 '작업실' 은 없기 때문이다.

"강의하러 일주일에 두번 학교가는 것 외에는 대개 모든 작업은 이곳에서 해요. 사실 집에서 일만하다 보니 손님을 치르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렇게 사진까지 찍어 남에게 보이기는 처음이구먼. " 멋적어 하는 김교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원어로 된 세계적 고전에서부터 최근 발행된 문학계간지들. 5평 남짓한 이 방에 가로로 풀어놓고 세로로 쌓아놓아도 부족해 두겹으로 들어앉은 책들은 모두 그의 손때가 묻어있다.

하지만 쌓여진 책더미에서 어떻게 책을 찾을까하는 생각은 쓸데없는 기우. 문학사.문학비평.서양문학서들이 각 항목별로 배열돼 있어 책주인의 꼼꼼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책에 골몰하다가 언뜻 고개를 들어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을 바라보면 피곤이 금세 달아나고 머리가 맑아져요. 별게 없는 방이지만 이 장관 하나는 자랑할만하지. " 그는 책상 앞에 항상 망원경을 놓아 두고 달아나는 노을빛을 따라가곤 한다.

거실 한쪽에는 12지신상이 그려진 병풍이, 맞은편에는 평생 이렇게저렇게 모은 도자기들이 진열돼 집주인의 기품을 함께 전해준다.

이집 안주인이 베란다에서 정성껏 길러내고 있는 대나무와 난도 이 집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말없이 일조하고 있다.

"집은 적당히 어지러워야 해요. 사람 사는게 그렇잖아요. 원래 깨끗하고 깔끔한데서는 일이 잘 안돼서…. " '문학천재' 이상 (李箱) 의 60주기를 맞아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작업을 시작한 김교수가 여기저기 펼쳐 놓은 자료들을 보며 슬며시 던지는 변명 (?) 이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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