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스턴트맨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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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영화감독 핼 니덤은 스턴트맨에서 출발해 감독의 자리에까지 오른 할리우드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군에 입대해 낙하산 교관으로 근무하던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57년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 란 영화에서 주연배우의 위험한 역할을 대신 맡은 것이 계기였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인 스턴트맨으로 활약했다.

77년 감독으로 데뷔하기까지 20년간 스턴트맨으로 출연한 영화는 모두 50여편. 그동안 그는 42차례나 골절상을 당했고, 척추가 부러진 것만도 두차례였다.

그가 연출한 영화도 '스모키와 밴디트' 등 모두가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액션영화들이다.

니덤의이름이 거론될 때면 반드시 함께 언급되는 인물이 배우 버트 레널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섹시한 스타' 혹은 '가장 돈 잘 버는 영화배우' 로 꼽혔던 레널즈 역시 스턴트맨 출신이다.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미식축구선수로 뛰면서 아르바이트 삼아 스턴트맨으로 출연하던 그가 부업을 그만 둔 것은 출연중의 자동차 사고 때문이었다.

니덤과 레널즈는 친한 친구 사이인데다 똑같은 스턴트맨 출신이라는 인연으로 레널즈는 니덤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한다.

이들 두사람은 크게 성공한 케이스지만 어느 나라의 영화계에서도 스턴트맨들은 목숨을 건 위험한 대역 (代役)에도 시원찮은 대우를 받으며 오직 미래만을 꿈꾸며 산다.

그래서 스턴트맨 자체가 영화의 소재가 되는 경우도 많다.

'스턴츠 언리미티드' 등 니덤이 연출한 영화가 많지만 77년 마크 레스터 감독이 연출한 '스턴트맨' 도 대표적인 영화라 할만하다.

액션영화 촬영중 스턴트맨이 사고로 사망하자 그 형이 동생의 스턴트맨 역할을 대신 맡아 동생의 죽음이 사고사였음을 입증해 낸다는, 스턴트맨 세계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엑스트라는얼굴이라도 비치지만 스턴트맨은 대역이기 때문에 얼굴이 비쳐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래서 스턴트맨은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직업이라고도 한다.

제작진이 아무리 신경을 쓴다 해도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칠 위험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한 방송사의 드라마 촬영중 스턴트맨 한 명이 물에 빠져 숨지고, 다른 한 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순전히 제작진의 잘못이라면 차제에 스턴트맨 기용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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