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정주영 회장 찾아가 미 소비자 불만 알려주니 “당장 고쳐라” 해결 지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요즘 미국 내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약진에는 JD 파워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이 회사 측 얘기다.

제임스 D 파워 4세가 쓴 『만족(Satisfaction)』이란 책에 따르면 현대차는 1986년 미국 시장에 상륙해 첫해 25만 대를 파는 기염을 토했다. 독일 폴크스바겐이 미국에서 10만 대 매출을 달성하는 데 11년이 걸린 데 비하면 눈부신 성과였다.

그러나 그 뒤 현대차 이미지는 급락했다. 변속기에 문제가 있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미국 각지로 퍼져 나간 탓이다.

J D 파워 측은 소비자 조사 결과 현대차의 변속기가 쉽게 고장 나는 데다 차체 가장자리 장식이 쉽게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 J D 파워 간부들은 한국의 현대차 본사로 찾아가 임원들과의 면담을 신청했지만, 실무 라인만 만날 수 있었다. 실무자들은 경영진이 제품 하자를 아는 것을 원치 않아 J D 파워 측과 현대차 간부들의 만남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실무진은 “현대차는 가격 경쟁력이 중요하지 다른 건 별 문제가 안 된다”며 품질 하자에는 전혀 귀를 기울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여성 운전자가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J D 파워 간부들은 96년 새로운 조사 자료를 들고 현대차 임원들과의 접촉을 다시 시도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직접 회의에 참석해 문제점을 경청했다.

구체적인 문제점을 들은 정 회장은 회의 석상에서 즉각 해결을 지시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는 게 J D 파워 측의 회상이다.

파워 4세는 “회사 내 정보 차단막으로 인해 경영진은 자칫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못 듣게 된다”며 “현대차가 가장 단적인 케이스였다”고 썼다.

남정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