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이웃 위해 몸 던진 67세 할머니 ‘의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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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위가 몰아쳤던 지난해 12월 26일 저녁 충남 예산군 덕산면 대치리 마을회관에서 마을잔치가 열렸다. 잔치가 끝나 주민들이 다 돌아가고 맹분섭(67·여)씨와 맹씨를 친언니처럼 따르던 윤희자(62·여)씨가 남았다. 늘 그렇듯 이날도 행사 뒷정리는 맹씨 몫이었다. 20여 년 동안 맡아온 부녀회장 자리를 몇 년 전 다른 사람에게 넘겼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마을에 일손이 필요한 곳엔 항상 맹씨가 있었다.

뒷정리가 끝날 즈음 정신지체를 앓는 이재순(50·여)씨가 왔다. 사고는 이때 벌어졌다. 맹씨와 윤씨가 문단속을 하고 회관을 막 나서는데 “끼이익-” 하는 자동차 급정거 소리와 함께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려나와 보니 무단횡단을 하던 이씨가 차에 부딪혀 도로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다. 사고차의 운전자는 비상등을 켜지도 않고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는 통에 이씨는 도로 바닥에 누워 꿈틀거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맹씨는 “위험하니 내가 데리고 나와야겠다”며 도로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 과속으로 달려오던 자동차가 미처 맹씨와 이씨를 피하지 못하고 두 사람을 치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사망했다.

사고 소식에 5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은 큰 충격에 빠졌다. 윤씨는 “그 양반이 없으니 동네가 텅 빈 것 같다”며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남 돕는 일에 열심이었던 사람이라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면사무소에 의사자(義死者)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19일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맹씨를 의사자로 선정했다. 유족들은 보상금 1억9700만원을 받는다. 맹씨는 역대 의사자 중 최고령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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