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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진달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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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꽃을 피우는 식물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1억3000만 년 전이다. 꽃식물은 등장 직후 500만 년 동안 5개 계통으로 분화됐다. 이른바 ‘꽃의 빅뱅’이 일어난 것이다.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500만 년은 정말 ‘눈 깜짝할 새’다. 이후 진화를 거듭한 꽃식물은 오늘날 40만 종으로 늘었다.

꽃은 식물의 번식 수단이다. 꽃가루를 최대한 퍼뜨리기 위해 새·박쥐·곤충의 부리·주둥이 모양에 맞춰 꽃도 진화해 왔다. 찰스 다윈이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한 난초(Angraecum sesquipedale)는 꿀샘의 길이가 30㎝나 되지만 제일 아래쪽 3㎝에만 꿀이 있었다. 다윈은 25~30㎝ 정도까지 길게 뻗을 수 있는 주둥이를 가진 나방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훗날 브라질 남부에서 그 정도로 긴 주둥이를 가진 스핑크스나방이 발견됐다. 발견은 못했지만 마다가스카르에 있을 그 같은 나방이 사라진다면 그 나방에 의존하는 난초도 멸종될 수밖에 없다(수잔 올린 『난초 도둑』).

꽃은 벌·나비를 끌어들이기 위해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한다. 아름다운 색깔과 향기를 위해서는 비용과 노력이 따르므로 대부분의 꽃은 수명이 짧다. 그래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최근 농촌진흥청은 꽃을 2년 이상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한다. 꽃을 에탄올이 주성분인 용매에 담가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고, 색깔이 든 보존제로 처리하고 염색하면 꽃의 형태와 질감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남녘은 물론 중부지방에서는 봄을 맞아 매화와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다. 지난겨울이 따뜻했던 탓에 개나리·진달래·벚꽃도 평년보다 열흘 정도 일찍 필 것이라고 기상청은 전망했다. 서울을 기준으로 개나리는 20일, 진달래는 21일, 벚꽃은 다음 달 4일 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허창회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1920년대 이후 개나리·진달래 개화일은 10년마다 2.4일씩 빨라지고 있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란다.

진달래가 서울지역에서 처음 꽃을 피우는 시기는 평년(1971~2000년의 평균) 기준으로 3월 31일이므로 올해는 평년보다 열흘 빠른 셈이다. 60년대엔 지금보다 12일 정도 늦은 4월 초순에 피기 시작해 4월 중순에 만개했다. 4·19 혁명 때 희생된 이를 기린 노래 ‘진달래’(이영도 시, 한태근 곡)가 불리는 것도 4월이면 진달래가 눈이 부시게, 꽃 사태를 이뤘기 때문이다.

온난화가 계속되면 한 세대 뒤엔 진달래가 3월에 피고 져 4월과는 무관하게 될 것 같다. 후손들은 4·19와 진달래를 연관 짓는 이유가 무엇인지 갸우뚱거리게 될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