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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부산영화제가 남긴것…부산, 새로운 영화메카 부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18일 막을 내리는 '영화의 바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의 모든 영화팬들을 빨아들였다.

이제 겨우 두번째인데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가 되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

상영되는 작품들이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 세계 최고의 영화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미 칸.베니스.베를린.로카르노 등 영화의 명소에서 상을 석권한 작품을 비롯 공인된 수작들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10일부터 연인원 20만명이 33개국에서 온 1백65편의 영화를 보았다.

객석 점유율 약 95%.이해하기 어려운 실험적 단편들이나 다큐멘터리등을 빼놓고는 완전히 매진된 셈이다.

부산의 개봉관들이 몰려있는 남포동은 전회 매진될 경우 수만명의 인파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전국에서 가장 교통사정이 나쁘다는 부산에 모여든 영화팬들의 열기는 외국의 초청인사들의 눈에 "영화에 미친 나라" 로 비쳐질 만했다.

홍콩 반환이라는 동양적 주제의 영화 ( '차이니스 박스' )에 출연해서 기꺼이 개막식에 참가한 영국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는 자신의 등장때 5천여명이 일제히 내지르는 환호에 기절할 뻔 했다고 한다.

당국에서 보지 못하게 한 왕자웨이 감독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를 상영할 때에는 압사 사고가 우려될 정도로 젊은 영화광들이 입장을 요구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량차오웨이 (梁朝偉) 는 남포동의 'piff (부산국제영화제) 광장' 50여를 지나는 데에 2시간 가량 걸렸다.

여러 명의 경호가 속수무책이 된 그의 옷과 몸은 난장판이 될수 밖에. 부산영화제의 주옥같은 영화를 보려면 먼저 악명높은 부산의 교통체증을 감내해야한다.

어렵사리 남포동에 들어서면 60년대 만원버스를 연상시키는 인산인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게 한다.

영화제를 알리는 무대와 푯말, 기념품 판매대를 보면 영화제가 한창임에 틀림없다.

유별나게 크게 나붙어 있는 싸구려 그림인 영화간판들은 그러나 딴판이다.

영화제와 관련없는 '머더 1600' '더블팀' 등이 나붙어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영화제 기간동안만 상영하지 않는다고 곧 파악해야 한다.

작은 입간판에 따로 영화제 상영계획이 씌어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부분의 입장권이 동이난 임시 매표소앞에 들끓는 사람들은 부지런하지 못했다며 후회할수 밖에 없다.

암표도 없고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전혀 융통성을 발휘할 생각도 없다.

밀려드는 인파를 감당하지 못해 곧잘 인내의 한계를 보이며 짜증을 낼 뿐이다.

짜증과 성가심의 장막을 뚫고 극장안에 들어서면 객석은 2시간 내외의 참을성을 수련하는 곳이 된다.

좁디좁은 객석에서 “영화가 좋다보니 무릎과 허리가 쑤시는 것도 잊는다.”

마지막 타이틀이 올라가면 인쇄물로나 보았던 세계적인 감독들과 배우들이 직접 등장, 뜨거운 질문 공세를 받는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대만의 차이밍량 등 아시아 영화의 영웅들이 신나게 젊은이들과 영화에 대해 토론한다.

다음 영화상영이 없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방금 본 영화에 대해, 아시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갑자기 프로그램이 바뀌거나 예정보다 30분후에 영사기가 돌아가도, 입장권이 없어 실험적인 단편이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더라도 관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고 만족해한다.

진지하게 열심히 영화를 보고있는 극장안의 사람들과 남포동 piff광장을 가득 메우며 서성대는 사람들은 그러나 전혀 다른 종류들이다.

영화제를 만만히 보고 구경나온 사람들은 영화제를 즐기는데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영화보는 것이라고 깨닫게 된다.

대단한 작품들이 왔다는 데 정작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은 남포동 한 가운데에 있는 연흥극장으로 눈길을 돌린다.

우리 영화히트작인 '접속' 과 '창' 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회매진. 준비가 부족했던 영화팬들은 영화는 보지 못하고 사람 구경이나 하며 영화제를 즐겨야했다.

주변의 즐비한 상가들은 갈곳 몰라하는 많은 사람들을 부를 따름이다.

그런데 한국영화는 어디 있었던가?

부산 =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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