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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난타한 '난타'…평론가 김미도씨 감상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지난 10일 호암아트홀에서 개막된 '난타' 가 장안의 화제다.

'난타' 는 각종 주방기구들을 두드려 사물놀이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국내 초유의 새로운 뮤지컬 퍼포먼스. 개막 초반부터 연일 만원 사례. 관객 대부분이 20대 전후의 신세대들이다.

이들은 공연시작전부터 억눌린 자아를 일거에 발산이라도 하듯 발을 구르며 열광한다.

급기야 PC통신도 달아 올랐다.

"일반 뮤지컬의 한계를 뛰어 넘는 색다른 경험" "우리 입맛에 맞는 가족용" 이라는 등 네티즌들의 평가가 만만찮다.

무엇이 이처럼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는가.

마침 30대 초반의 평론가 김미도씨가 '난타' 에 매료돼 글을 보내왔다.

극단 환퍼포먼스의 '난타' (11월2일까지, 호암아트홀)가 가을 연극계를 난타할 기세다.

'뮤지컬 퍼포먼스' 로 전제된 이 작품은 최근 실험연극계에 신조류로 등장한 '비언어적 공연' (Non - verbal Performance) 을 표방하면서 미국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장기 흥행에 성공한 '스텀프' (Stomp) 와 '튜브' (Tubes) 등을 모방하고 있다.

특히 제작진이 지난해 내한 공연한 '스텀프' 로부터 자극 받았음을 공공연히 시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음흉한 '모방' 이 아닌 솔직한 '차용' 의 입장을 보인다.

'난타' (구성.연출 전훈)가 '스텀프' 로부터 가져온 가장 강력한 극적 모티브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행위와 그 효과음이 창출하는 스펙터클이다.

'스텀프' 가 주로 청소도구들과 여러가지 형태의 통을 두드리는 행위, 그리고 고난도의 손뼉치기를 통해 공연을 구성한 데 비해서 '난타' 는 손뼉치기의 방법을 거의 그대로 빌려오는 한편 주로 주방의 취사도구들을 두드리는 방법으로 독창성을 열어 놓고 있다.

명백한 모방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난타' 는 '스텀프' 보다 훨씬 재미있다.

이는 '스텀프' 가 비슷한 리듬과 비트의 무한정 반복으로 단조로움을 피하기 어려운데 비해 '난타' 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리듬의 변주로 관객들을 시종 즐겁게 해준다.

게다가 밴드 도라 (Dora)가 무대 뒷쪽에서 라이브로 받쳐주는 록.펑키.재즈등의 다양한 음악 (구성 이동준) 은 청각을 현란하게 자극한다.

거대한 주방으로 탈바꿈된 무대 (디자인 김충신)에서 4명의 배우들 (김문수.서추자.이준우.한재석) 이 보여주는 두드리기 기량과 연기는 가히 환상적이다.

요리사 복장으로 등장한 이들은 후라이팬.도마.냄비등을 갖가지 방법으로 두드리며 흥겨운 사물놀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채소를 난도질하거나 북채를 다루듯 칼을 돌리는 매우 위험한 기예까지도 능숙하게 소화해낸다.

'난타' 는 '스텀프' 외에도 '튜브' 로부터 개막 장면에 코믹한 자막을 도입하는 것,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특정 소품을 무차별 살포함으로써 집단적 엑스터시에 도달하게 하는 효과를 빌려온 듯하다.

'튜브' 에서는 주로 종이끈과 엄청난 양의 두루마리 화장지가 사용된 것에 비해 '난타' 에서는 수백개의 작은 공들과 뻥튀기 과자가 쏟아진다.

'난타' 는 언어의 배제, 장르의 파괴와 혼합,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라는 포스트모던한 공연 양상의 한 특징을 극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김미도<연극평론가·서울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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