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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청년 실업대책, ‘소프트 + 휴먼’으로 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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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이런저런 대책이 있지만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은 청년실업 프로그램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선 젊은이들을 일선 학교에 보조교사로 파견하거나 해외로 내보내 사회경험을 쌓게 하는 방안 등이다. 서울시가 임금을 반납해 조성한 100억원을 1000명의 청년인턴에게 투자하는 등 지방정부에서도 나름대로의 대책이 나오고 있다. 공공근로, 운하·강 개발사업과 교육인턴 등이 뒤섞이면서 ‘녹색뉴딜’ ‘교육뉴딜’이니 하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원래 뉴딜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치적 대타협을 통해 도출시켰던 증세정책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풀어놓는 돈 보따리를 뉴딜이라 한다면 지하에 있는 루스벨트가 웃을 것이다.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을 해본다는 의미로 뉴딜을 넓게 이해한다 해도 이제는 새로운 개념 설정이 필요하다.

정부 책임자들은 뉴딜 수립 때 우리의 젊은이들이 과거 토목공사·제조업 시대의 청년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얼마 전 방한한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의 분류법에 따르면 지금의 청년들은 정보화시대(Information Age)를 넘어 개념화시대(Conceptual Age)에 살고 있다. 정보화·개념화 시대의 청년에게 삽질·괭이질을 연상케 하는 산업사회 시대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면 뉴딜은 성공하기 어렵다.

주변에서 찾아보면 요즘 청년에게 맞는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다. 우선 IT 분야에선 지리정보 정리, 간판 데이터베이스 관리, 프로그램 오류 잡기, 정보화 교육봉사 등이 있다. 게임기획, 애니메이션, 문화재 해설 및 관리, 이야기 재간꾼 활용, 디자인 같은 문화 분야 역시 청년에게 맞는 직업이다. 복지 분야에도 갖가지 일자리가 널려 있다. 노령화 영향으로 노인 서비스 수요가 폭증할 것이다. 실업창구·상담창구·가정방문 서비스나 장애인 지원 등의 인력은 지금도 태부족하다. 이런 영역에 청년들이 투입되면 사회가 좀 더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게 된다. 자연스럽게 위기 대처능력도 커질 것이다.

공공근로나 일반사무 인턴의 경우 일시적으로 주머니를 채워줄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정보·문화·복지 분야에서 인턴십을 마친 청년들은 해당 분야의 직업인으로 커나갈 가능성이 높다. 젊은 상상력과 열정이 장점이 되는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노동부·보건복지부 등 전 부처는 이런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통합 추진체를 띠워야 한다. 그리고 1년 후, 2년 후 우리의 젊은이들이 개인사업자로, 전문가로, 기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보·문화라는 소프트와 복지라는 휴먼이 합쳐진 ‘소프트 휴먼 뉴딜’은 청와대의 지하벙커보다도 더 큰 의미를 우리 사회에 던질 것이다. 발상의 전환과 비전의 개념화, 그리고 실천을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복지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