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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내기 패션이 된 삭발…유행으로 정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인기그룹 DJ.DOC의 노래 한토막. "뒤통수가 예뻐야만 빡빡 미나요/뒤통수가 못생겨도 빡빡 밀어요 (…) 옆집 아저씨 반짝 대머리 옆머리로 소갈머리 감추려고 애써요/억지로 빗어넘긴 머리 약한 모습이에요/감추지 마요/빡빡 밀어요요요. " 그들은 삭발을 통해 가식을 깨뜨리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왜 밀자는 걸까. 삭발을 얘기하자. 부대 앞 허름한 이발소에서 떨어지는 머리뭉치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청년. 배역 때문에 삭발을 감행한 여배우. 심기일전을 위해 머리를 미는 운동선수 또는 정치인. 이도저도 아니면 백혈병 친구와 똑같이 머리를 자른 여학생이 등장하는 과자광고…. 단발령에 대한 유학자들의 항거가 한 1백년쯤 됐던가.

이제 그런 상투적인 사연만으로 삭발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

대신 그 엄청난 개성.개성. 삭발은 어엿한 하나의 헤어스타일이자 유행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연극배우 심철종, 음악인 남궁연, '클론' 의 구준엽등 삭발패션의 선구자들에게 물어보라. 제각각 다른 동기에서 비롯된 머리깎기였을 테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에게 얼마나 즐겁고 유쾌한 자기 변신의 수단이었는지를…. 다 똑같다.

피아니스트 임동창, 철물 디자이너 최홍규, 그룹 '컬트' 의 손정한, 댄스그룹 '블랙 투 블랙' 의 선우가람, 연극배우 홍석천, 그리고 이름모를 젊은 행위예술가.패션리더등. 삭발자들은 스스로를 괴짜나 신기한 존재로 쳐다보는 시선을 뿌리치고 싶어 한다.

아니 그들은 이미 삭발 예찬론자로 자리를 잡고 있다.

다양한 형식의 실험극에 출연해온 심철종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90년부터 삭발을 고수한 그는 가발을 써야 하는 작품에는 절대 출연하지 않으며 영원히 맨머리로 살겠다는 '과격파' 다.

반짝반짝하는 그의 머리에 빗대 '온누리 광명당' 의 당수로 불리는 남궁연씨. 그의 '머리밀기' 사연은 가슴 아프다.

'잘 나가는 사람' 들이 한결같이 지니고 있듯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지난 95년 그는 되는 일 하나 없이 빚더미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더이상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살자. ' 결연히 머리를 밀었다.

그러자 방송국으로부터 출연요청이 쇄도했다.

머리 모양 자체가 '참신한 문화상품' 으로 작용했던 것일까. 그는 "시몬, 들리는가.

바람이 뒤통수를 스쳐가는 소리가…" 라는 즉흥시로 삭발의 미학을 논한다.

몇개 불편한 점이라면? "집이 봉원사 근처라 막하는 행실을 두고 오해를 받는 것. 여름의 일사병, 겨울의 동상의 위험. " 구준엽씨는 3년전 나태해지는 마음을 잡기 위해 머리카락을 날려버렸다.

멋있다는 주변 평에 빡빡머리를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다.

삭발이 남자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그룹 쿨.US의 멤버였던 유채영을 기억하는지. 유채영씨는 비구승같은 머리로 '정말 여자 맞냐?' 는 의문을 자아낼 정도였다.

여기다가 최근에는 양성적인 앤드로지너스 룩 (Androgynous look) 의 유행에 편승한 리아.홍진경식의 머리밀기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내리는 결론은 간단하다.

"긴 머리가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머리를 길러야 하고 삭발이 어울리면 삭발하는 것. " 그래 패션이라는 거다.

자유로움이라는 거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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