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공방에 녹아나는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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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비자금폭로의 불똥이 기업에까지 파급되자 잠시 숨을 돌리고 회복세를 보이던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집권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폭로 위주 정치행태가 금융실명제를 사실상 무효화시키고 있다.

'금융실명거래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경제명령' 을 정면으로 무시하고, 필요하면 누구 계좌든지 열어보고 금융거래의 내역도 주인 모르게 감시하는 상황이라면 이는 시장경제의 토대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자금의혹을 제기하는 여당쪽에서 당초 이같은 경제적 의미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하지 않은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비자금수수와 관련해 거명된 기업은 물론 다른 기업들도 비자금공방이 가져올 유탄이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해 하고 있다.

이래 가지고는 내년에 경제가 회복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아사태 후유증으로 인한 현재의 금융경색은 매우 심각하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과 경남지역의 어음부도율이 1%를 넘어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만약 이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면 어음거래는 자취를 감추고 현금거래만 이루어지는 경제의 위축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다.

이 와중에서 또 하나의 기업그룹인 쌍방울이 부도의 한계선상에서 흔들리고 있어 파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주식시장도 탄력을 잃고 붕락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으레 선거철이 되면 정치열풍 때문에 경제가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것이 상례화돼 왔지만 이번의 경우는 너무 상황이 심각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살아남는 기업이 몇개나 될지 염려된다.

경제기반이 무너지면 누구를 상대로 무슨 재원으로 정치하겠다는 것인지 여야 정치인들은 냉정히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는 정부의 정책을 통해 경제를 지탱하는데는 한계가 있고 별 효과도 없다.

가장 필요한 것이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정치공방을 벌여도 시장경제의 기관차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을 흔들어 불안하게 하는 잘못은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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