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사교육 수렁 탈출하자” 엄마들의 작은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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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의 학부모에게 ‘사교육’은 미국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견줘보면 정신분열증을 겪는 경제학자 존 내쉬를 따라다니는 ‘환영’과 비슷한 존재다. 그 실체(효과)를 알 수 없으면서도 떠밀리듯 대화(사교육)해야만 한다. 그건 수동적인 삶이며, 생산성이나 지속가능성 모두 낙제점이다.

기자는 2년 반 전 서울 창덕궁 옆에 ‘엄마학교’가 문을 열었을 때부터 ‘꿀단지’를 찾듯 취재했다. 서형숙 교장의 ‘엄마와 아이가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교육관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기자뿐이 아니었다. 3000여 명의 엄마들이 서 교장의 ‘능동적인 삶의 방법’에 동감했다. ‘성적만 보지 말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는 서 교장의 강의가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엄마들은 사교육 끊기 실천 운동을 포함한 ‘수행일기’를 쓰고 인터넷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엄마로서 아이와 올바른 삶을 사는가’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본지 3월 16일자 1, 8면>

서 교장은 ‘신토불이’ 음식처럼 교육도 이 땅에서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에겐 자녀를 유학 보낼 경제력도, 정보력도 있었지만 쓰지 않았다. 천(기후)·지(토양)·인(명장)의 조화가 명품 와인을 키워내듯 우리나라의 인재도 우리나라 자연 안에서, 공교육 안에서 교사의 힘으로 길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이런 ‘신토불이 교육관’이 사교육에 지친 엄마들을 뭉치게 하고 정부까지 움직인 것이다. 조기유학생이 급증하고 한 해 사교육비가 30조원을 넘는 상황에서 정부 관료들은 느끼는 점이 있을 것이다.

교과부에 학부모 지원과가 생기고, 학부모·기업이 출연하는 공익 학부모재단 설립이 추진된다는 소식을 반기는 이들이 많았다.

“정부가 이제야 교육 수요자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 “세 아이 아빠인데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느냐” “나도 사교육 없이 아들 둘을 서울대에 장학생으로 보냈다”는 제보까지 다양했다. 서울 길동에 사는 신혜숙(37)씨는 “퇴직 교사와 집에 있는 고학력 엄마들이 옆집 아이를 방과 후에 돌보는 방안을 제안하겠다”고 했다.

이제는 엄마학교 3000명 엄마들의 사교육 속앓이와 작은 실천운동을 정부가 보듬고 지원해야 한다. 엄마들의 실천운동이 절대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지만 사교육 ‘환영’을 치유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 교장은 이렇게 조언했다. “온 세상이 천국 같아도 내 집이 그렇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 힘은 엄마에게 달려있다. 항상 오늘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내 아이가 웃고 있는가, 내가 행복한가를 물어라.”

이원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