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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원 ‘모레노 빙하’

중앙일보

입력

꽃무덤처럼 둥근 가시나무들

▷1월 23일=칼라파테로 다시 돌아가는 날. 아침 첫배로 떠났기 때문에 버스가 오기로 한 오후 3시까지 선착장에서 가까운 ‘로스 쿠에르노스(Los Cuernos) 전망대’에 갔었다. 1시간짜리 코스니 왕복 2시간이었다.

가는 길이 여간 좁지 않아서 마주 오는 사람은 피해줘야 하는 조그만 발 공간을 짬짬이 만들어놓았다. 더군다나 마치 둥그런 꽃무덤 같은 가시나무들이 온 땅을 뒤덮고 있어서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노란 들국화가 가끔씩 피어 색의 조화가 이루어져 눈은 즐거웠다. 날씨는 여름이고, 제일 뜨거운 정오 무렵이었다. 이렇게 더운 날 아침에 떠날 때 추울까봐 내복까지 껴입고 왔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전망대에 다다르니 앞에는 우람한 설산 ‘로스 쿠에르노스’, 그 밑의 푸른 빛 넓은 호수가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힘은 좀 들었지만 다녀오니 마음이 뿌듯했다.

타임머신 타고 빙하기로

▷1월 24일=오늘의 ‘모레노 빙하’ 아이스 워킹은 내년쯤 빙하국립공원을 크루즈할 팀을 위한 사전답사의 의미도 있다. 크루즈 팀은 빙하 트레킹을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넜다. 배가 빙하 가까이 접근하자 빙하의 크레바스 사이로 햇볕이 반사되어 크리스털처럼 반짝이면서 만들어내는 신비한 블루의 그늘 아닌 그늘에 몸이 짜릿짜릿 전율이 왔다.

빙하 입구에서 가이드들이 아이젠을 신겨주는데, 아마도 1900년대의 유물인 듯, 무거운 쇳덩어리로 된 고물 아이젠이다. 신고만 있어도 무거워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마치 모래밭을 걸을 때처럼 깊은 동작으로 발을 올렸다 내렸다 해야 했다. 그것을 신고 다시 15분쯤 걸어가서 비로소 아이스 워킹(Ice Walking)이 시작되었다.

드넓은 빙하 위를 걷기 시작하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빙하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 보면 작은 샘(?)들을 만나는데, 측량할 수 없는 깊이는 그 청명한 파란 색을 통해 온몸으로 설명해주었다. 가운데로 갈수록 색깔이 짙어져서 얼마나 맑은 파란 색인지 모시에 물을 들이면 금방 시원한 새파란 색으로 물들 것만 같았다.

협곡을 얼음벽에 어깨를 비비며 걸어 올라가기도 하고, 마치 주름치마 같은 아니 아코디언처럼 굵게 주름 잡힌 구릉을 걷기도 하고, 지구의처럼 둥근 언덕도 오르면서 거의 1시간 반 동안을 걸어다녔다.

캐나다의 록키 마운틴에서도 빙하 위를 걷는 기회가 있지만, 거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거대한 빙하 위에서 갖가지 형태로 몸매를 자랑하는 빙하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세상을 다 잊어버리고 나는 위대한 자연의 호흡에 그냥 녹아버렸다.

이렇게 광활한 공간에 서면, 그것도 시공을 초월하는 빙하의 앞에 서니 자연스럽게 ‘전능하신 분’의 무한한 힘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은 위대한 하나의 사원’이란 보들레르의 말이 참으로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얼음 위의 산책은 빙하 얼음 덩어리를 깨뜨려 넣은 위스키 한 잔의 건배로 마무리가 되었다. 무거운 아이젠을 신고 두 시간 가까이 걸어 다니고 나니 종아리에 알이 박혔다.

호텔에 돌아왔을 때 마당의 바비큐 화덕에서는 조재명씨가 준비한 고기가 지글지글 열심히 익어가고 있었다. 호텔주인 내외까지 초대해서 우리는 호텔 식당에서 멋진 만찬을 가졌다. 이날 밤, 풍성한 와인과 더불어 사막의 한 가운데 작은 마을 칼라파테에서 우리의 감성은 축제의 흥분으로 하늘의 별까지 취하게 만들었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Glacier Perito Moreno)=칼라파테에서 80Km, 버스로 2시간 걸린다. 안데스 산맥의 끝자락인 ‘빙하 국립공원 (Los Glaciares National Park)’ 남쪽 끝에 있다. 빙하국립공원은 198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빙하 주변은 길이가 160Km이나 되는 ‘아르헨티나 호수’ 등 많은 빙하 호수와 우뚝 솟은 산맥이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아름다운 빙하가 바로 모레노 빙하이다. 모레노 빙하는 약 3만년 전에 형성된 몇 안 되는 빙하로 폭이 5Km, 높이가 60~70m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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