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끊자” 엄마 3000명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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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한지 살펴본 적이 있으세요?”

서울 계동 ‘엄마학교’에서 서형숙 교장(앞줄 가운데)이 ‘기쁜 엄마 과정’ 수업을 마친뒤 엄마들과 활짝 웃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변영균·서 교장·박미경씨, 뒷줄 왼쪽부터 손은영·신혜숙·서현선·정효숙·김민아씨. [김태성 기자]

2006년 여름. 서울 종로구 창덕궁 옆에 있는 ‘엄마학교’에서 박미경(40)씨는 서형숙(51) 교장의 질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외동인 예훈(천안 천성중 1)이를 1등 만들려고 좋다는 학원은 다 보냈지만 마음은 헤아려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박씨는 아들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원에 떼밀었다. 레고·피아노·태권도·성악·미술·영어 학원 등 10곳이 넘었다. 월 100만원 이상을 썼다. 아이는 힘들어 했고 미소도 사라졌다.

마침 사교육에 지친 엄마들이 모이는 학교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매주 수요일 천안에서 KTX를 타고 엄마학교를 찾았다. 두 자녀를 학원 한번 보내지 않고 명문대에 보낸 서 교장의 ‘아이와 엄마가 행복하게 사는 법’ 강의는 박씨의 마음을 바꿨다.

“아이에게 학원을 선택하게 했어요. 독서·영어 두 개만 고르더군요. 처음엔 성적이 곤두박질했어요.”

그런데 예훈이는 쉬엄쉬엄 공부하는 법에 재미를 느꼈고 명랑해졌다. 6학년이 되자 1등을 했다.

엄마학교에는 박씨 같은 이가 3000여 명 다녀갔다. 대부분 유아·초·중생 엄마다. 학교는 2006년 9월 서 교장이 “자녀 교육에 지친 엄마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자”는 뜻으로 만들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4주 과정이다.

엄마들은 사교육 줄이기 과정을 담은 일기를 블로그에 올렸다. 자신들의 자녀부터 학원을 끊거나 줄이고 “학교를 믿어 보자”는 운동도 했다. 점점 입소문을 타면서 지역 모임도 만들었다. 광주·대전·천안·여수 등 10여 곳에 ‘엄마학교 연구모임’이 조직된 것이다.

정부는 엄마학교의 활동에 주목한다. 교육정책 입안자인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이곳을 다섯 번 방문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엄마학교를 사교육 끊기 운동의 모델로 발전시키고, 이런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전담 기구를 만들자.” 교과부는 이달 말 ‘학생·학부모 지원과’를 신설한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교육 수요자 중심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하반기에는 학부모·기업이 출연하는 ‘학부모 재단’도 만든다. 300억~400억원 규모다. 학부모 콜센터와 지역센터도 가동할 예정이다. 서 교장은 “사교육에 지친 엄마들의 작은 노력이 일을 냈다”며 “순수한 운동이 공교육 살리기로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원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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