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외원조 현장을 가다] 캄보디아 수영 대표팀 배수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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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국가대표 수영팀을 지도하고 있는 봉사단원 배수진(26)씨(左).

지난 15일 오전 6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도심에 있는 올림픽 스타디움 수영장. 이른 아침인데도 50m 풀의 물살을 가르는 캄보디아 수영 국가대표 선수들의 몸놀림이 활기차다. 풀 밖에서는 자그마한 체구의 젊은 여성 코치가 서툰 크메르어로 "힘내, 더 빨리"라고 쉴새없이 외쳐댄다. KOICA가 파견한 한국 봉사단원 배수진(26)씨다. 그녀는 6개월 전부터 캄보디아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다. 배씨는 고교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수영선수 출신이다.

"처음엔 일반 체육교사로 배치받았지만 수영코치를 하겠다고 떼를 썼어요."

자신이 선수 시절 만년 2위에 머물렀던 설움 때문일 수도 있지만 배 코치는 캄보디아 선수들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뭔가 힘이 돼줘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단다.

캄보디아의 남자 국가대표 수영선수 5명은 모두 직업을 갖고 있다. 자전거 수리공도 있고 창고지기도 있다. 심지어 축구 심판을 하기도 한다. 이른 아침에 훈련하는 것도 이들이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6개월 동안 한번도 물을 갈아본 적이 없는 수영장이지만 그나마 수영 연습을 할 수 있는 것만도 그들에게는 행복이다. 배씨는 국가대표 중 홍일점인 여자 선수한테 "수영복이 예쁘다"고 말했다가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을 때 다른 나라 선수들이 버린 것을 주워온 것"이라는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배씨의 캄보디아 사랑은 그때 시작됐다. 다행스럽게도 KOICA 프로그램에 개별기획 제도가 있었다. 현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봉사단원들이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고 효과적인 지원 방안을 신청하면 KOICA가 1만달러(약 1200만원) 한도에서 지원하는 제도다. 당장 선수들을 위한 수영복과 물안경.수영모자 등 필수 비품을 신청해 지원받았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도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실내용 물안경을 받아들고 좋아하던 선수들 표정을 배씨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배씨는 이와 함께 본격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도 신청해둔 상태다. 선수들이 운동부족으로 근육 대신 군살만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 코치한테 하루 100대씩 맞아가며 운동을 했지만 이들에게는 그것도 사치예요. 운동에 필요한 단백질 섭취는커녕 하루 세끼도 겨우 때울 정도니까요."

배씨는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그에게 진짜 속타는 일이 있다. 3년 전 동남아 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던 헴키리(24)가 훈련부족 탓에 좋은 기록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헴키리를 이번 그리스 올림픽 무대에 세우겠다는 꿈은 좌절됐다. 하지만 다음 아시안 게임에서 그는 헴키리에게 꼭 메달을 안겨주고 싶다. 캄보디아인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울란바토르.프놈펜.비엔티안=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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