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같은 내 돈, 믿고 맡길 사람 없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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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투자자 교육의 효과가 없다는 겁니다.”
얼마 전 만난 한국투자자교육재단 김일선 상무의 말이다. 황당했다. 이 재단은 투신안정기금 400억원을 재원으로 2006년 설립됐다. “특정 증권사나 운용사에 소속된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철저히 투자자들 편에 서 있다”고 자부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재단의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는, 투자자 교육에 대한 효과를 부정하는 말을 하다니 의외였다.

사정은 이랬다. 영국에서 1999년부터 약 10년간 투자자 교육의 효과에 대해 조사했다고 한다. 투자자의 지식 수준이 투자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 투자자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의도였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교육이 투자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거나 거의 없다는 거였다. 금융상품이 복잡해져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설령 이해했어도 그걸 바탕으로 적절한 투자 판단을 하기는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교육은 필요 없다는 얘기냐는 반문에 김 상무는 말을 이었다. “개별 상품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의미가 없죠. 대신 영국에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제대로 된 금융사와 판매직원을 고르는 법을 교육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요.”

그래서 재단도 올해 사업 목표의 하나로 금융상품 유통 구조를 어떻게 하면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가로 잡았다고 했다. 내 자산에는 어떤 상품을 투자하는 게 좋은지 제대로 된 재무 ‘의사’가 처방할 수 있도록 투자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현실은?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사이비 의사가 판친다. 은행·증권사 직원들의 횡령 사고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1월 A은행 지점장이 225억원을 횡령했다가 금융감독원이 특별검사에 착수하자 목을 매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앞서 B증권사의 차장급 직원은 ‘폰지 사기(금융다단계)’ 수법으로 고객 돈을 받아 챙겼다가 구속됐다.

돈을 굴리는 이들도 문제다. C운용은 2월 자사 펀드매니저가 160억원의 자금을 부당하게 관리했다며 그를 고발했다. 최근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현직 펀드매니저라 밝힌 이가 “펀드매니저의 모럴 해저드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투자한 종목의 주가를 의식하며 자산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도 있다…. 주가 폭락 시 펀드매니저는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의 수익률보다 자기 매매 계좌의 평가손이익에 더 관심이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제대로 된 의사가 필요하다. 김 상무는 선진국에서는 개별 상품을 팔아 챙기는 수수료가 아니라 고객의 전체 자산에 비례해 보수를 받는 구조가 금융업계 종사자들의 모럴 해저드를 막는다고 했다. 고객의 자산이 늘어야 자기 수입도 늘어나니 고객 돈을 내 돈처럼 관리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제도가 전부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최근 650억 달러(약 96조 4000억원)에 달하는 폰지 사기가 있었다. 열 장정이 한 도둑 못 막는다지 않는가. 제도를 뛰어넘는 금융인들의 윤리의식을 기대한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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