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반입 안 돼 조업 중단 기업 나타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5호 08면

14일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국사무소에서 개성공단으로 출근하려던 남측 근로자들이 ‘출경이 어렵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착잡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다.  도라산=연합뉴스

개성공단은 우울하고 가라앉아 있다. 공단협의회 이임동 부장은 “속으로 불안을 삭이고 있다”며 “일부 기업은 이미 원·부자재 조달이 안 돼 조업을 중단하기 시작했고, 가스도 떨어져 가고, 식재료도 3~4일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북한 개성공단 인력 사실상 억류

사실상 억류돼 있는 문홍주 위원장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자 직원이 받았다. “현지에 동요는 없는지”를 묻자 그는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서울에 있는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에 물어보라”며 말을 삼갔다.

입주업체들은 이번 사태로 공단이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을 까 걱정한다. 공단 관계자는 “바이어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공단 입주 업체를 상대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고 했다. 북의 통제조치로 원자재 반입이 어려워지면서 생산 불능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코오롱과 제일모직은 지난주 공단 업체에 의류 제작을 발주했다. 원자재가 3월 9일 들어가야 했지만 이날 있은 1차 차단으로 못 들어갔다. 14일 반입조치를 취했는데 다시 차단된 것이다. 생산 설비를 공단 하청 업체에 빌려 준 일부 원청업체는 설비를 빼 나가려 한다. 이 관계자는 “700명 공단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의 걱정은 일자리보다 인질화에 모아진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신언상 전 위원장은 “북한이 선별해 내보냈다는 것은 위험신호”라며 “공단 인질화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개성공단이 이미 인질화됐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화여대 북한학과 조동호 교수도 “북한이 처음부터 인질화 전략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하루 만에 풀린 지난 9일의 차단 조치가 남측에 큰 충격을 줬음을 확인하고 다시 휘두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공단의 전임 간부에 따르면 개성공단 추진 당시 노무현 정부의 위기 대응 비상 매뉴얼은 ▶초기에 다양한 채널로 현황을 파악하고 ▶중국 등 유관국 및 국제기구를 통한 압력행사로 신변 안전에 이상이 없도록 조치하며 ▶이어 귀환시킨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 간부는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라고 했다. 노 정부 때 청와대의 안보 문제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당시 대책은 좋았던 남북 관계를 전제로 해 지금처럼 악화돼서는 통할 수 없는 방안”이라고 했다. 한 정부 소식통은 “전 정부에서 마련된 실효성 없는 대책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을 청와대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남측이 먼저 출입통제 등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지는 조치를 취해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먼저 포기하는 측이 비난을 뒤집어쓰게 돼 남북 어느 쪽도 먼저 포기를 말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신 위원장도 “우리가 먼저 나서 폐쇄를 말할 수 없다”며 “그래서 북은 계속 압박할 것”이라고 했다.

한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현 정부가 마지노선에 대한 걱정 없이 내지르는 방식으로 대북 정책을 펼쳤는데 이제 수습하기 어려워 고민하고 있다”며 “모두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있어 생긴 사태”라고 개탄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북에서 대화파가 퇴조하고 군이 의사결정을 장악하면서 남북 강경파가 대결하는 형국”이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강경파 간 대결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봐야 한다”고 걱정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