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카와, 위대한 과학자의 ‘생각의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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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호 38면

지난주 중앙SUNDAY에 실린 2008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교수 인터뷰를 보면서 국력으로서의 기초과학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시간에 휘둘리지 않고, 길게 보는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이 갔다. 위기 상황일수록 튼튼한 기초가 빛나는 법이며, 불황 이후의 국가 경쟁력은 튼튼한 기초과학에서 나온다. 과학의 출발은 생각이다. 마스카와 교수는 하루 3시간씩 자면서 한 달간 한 가지 주제만 생각한 적도 있다고 한다.

생각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훈련을 통해 나온다. 훈련된 야구 선수가 자기 앞을 스쳐 가는 시속 150㎞짜리 야구공을 보고 칠 수 있듯이 과학자들도 훈련을 통해 생각의 힘을 키운다. 이 훈련 과정은 운동선수의 훈련과 같이 자신과의 싸움이고 극기를 통한 성취의 과정이다.

흔히 위대한 과학자들을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천재적인 두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천재적인 과학자들은 문제를 보고 답을 바로 내는 것 같지만, 이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유사한 문제를 이미 다루어 보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시도하기 전에 이미 해본 것이다. 창의성이란 것은 남들이 축적해온 기존 지식을 잘 이해하고 그를 기반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때 발현된다. 기존의 문제 해결 방식에 자신의 작은 발상을 추가하는 것이 창의성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무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과학은 축적이다. 수많은 과학자의 모래알 같은 업적들이 모여 인류의 과학이라는 산을 형성하는 것이다. 때로 위대한 업적들이 큰 자리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살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막다른 골목에서 절실하게 살길을 찾다 보면 새로운 발상을 통해 새로운 길이 보인다. 과학적 문제를 풀고자 할 때도 흔히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게 된다. 유사한 길을 탐험하던 다른 연구자들도 그 막힌 길에서 멈추고 포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 끈기, 집중력, 새로운 길을 볼 줄 아는 시각, 그런 것들을 통해 새로운 길이 열린다. 마스카와 교수가 이야기하는 한 달 정도의 집중이란 바로 이런 경험이다. 그는 과학자로서 치열한 삶을 살면서 ‘생각의 힘’과 ‘집중의 힘’을 통해 최고봉에 올라 보았다.

새로운 발견을 할 때의 과학자는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구를 찾고자 하는 사람처럼 절박하다. 마스카와 교수가 그랬듯이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신적 긴장감 때문에 잠도 오지 않는다. 심신이 완전히 지쳐 기진맥진해야 겨우 잠에 빠지는 긴장의 연속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계속 생각을 바꾸고 기존의 이해를 뛰어넘는 새로운 발상을 추구해야 한다. 긴 고민의 과정을 거쳐 한 줄기 빛이 보이면,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게 된다. 이런 과정은 정신적으로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힘들기 때문에 쉬고 싶게 되지만, 쉬면 그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므로 중단 없이 생각하는 끈기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과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다. 원하는 연구와 원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환경, 다른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과학자들에게 공기와 물과 같은 생존 조건이다. 교육이나 과학에 대한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제시될 때 정책 입안자들이 이런 탐구의 과정과 창의성을 이해하면서 정책을 만들면 좋겠다.

과학자들의 치열한 탐구 과정에는 인간 승리와 휴먼 드라마가 들어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과학 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어떤 중요한 연구 결과로 암을 정복하게 될 것이라든지, 신기술을 통해 신산업이 창출된다든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사고를 넓히는 것 자체가 중시되어야 한다. 이런 게 국력으로서 기초과학의 경쟁력을 키우는 환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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