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킬까봐…두려운 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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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호 23면

“당장 그만두지 못할꼬!”
가끔 필자는 TV 사극을 보다가 화면 속에 뛰어들어 호통치고 싶은 경우가 있다. 바로 신혼 첫날밤 장면이 나올 때다. 연지곤지 갑순이와 사모관대 갑돌이의 혼례가 끝나면 둘은 드디어 신방에 든다. 그 가슴 뛰는 신방에 불청객들이 있으니 손가락에 침을 묻혀 가며 문의 창호지를 뚫어대는 얄궂은 사람들이다.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이른바 첫날밤의 ‘훔쳐보기’ 풍습은 관음증의 재미로 여겨지겠지만 막상 주인공인 신랑신부는 부담백배일 수밖에 없다. 부부의 성생활은 그들만의 비밀스러움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훔쳐보기 풍습에 옛날 꽤 많은 부부가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부부들도 ‘들킬까봐…’ 하는 불안과 긴장 때문에 성흥분을 제대로 못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들킬까 걱정하는 노출 불안은 성장기의 자위 때 흔히 시작된다. 자위행위에 대한 죄책감에다 부모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이 겹쳐 급히 사정해 버리는 습관이 붙는다. 느긋하고 안정적인 성흥분을 익히지 못한 채 성반응은 조급한 패턴에 고착화될 수 있다. 이런 패턴은 흥분 시 쉽게 사정하는 조루의 원인 중 하나다.

또 시댁 식구 등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경우 성생활의 비밀스러움이 보장되기 어렵다. 누군가 자신의 성행위를 은근히 눈치채고 있다는 불편감은 성흥분을 차단한다.

더욱이 부모 중엔 자식의 성생활이나 임신에 대해서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례도 꽤 있다. 그들은 자식을 염려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엔 참견하는 셈이다. 이런 시부모들은 아들 내외를 잘(?) 교육시켜 부부로서 제법 안정되면 분가시킬 계획이라 항변한다. 하지만 신혼 몇 년은 부부가 성적 일치도를 맞춰 가는 시기로 당사자끼리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하는 게 낫지, 성생활에 제3자의 개입은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시부모 외에도 자녀의 존재나 함께 사는 처제·시동생 역시 엄밀히 말하면 방해 요소다. 옆방의 동생이, 혹은 자녀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성행위 소리를 듣게 될까 걱정하면 제대로 성반응이 나오기 힘들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은 그나마 해결책이 간단한 경우다. 더욱 뿌리 깊고 심각한 경우는 유독 아내 앞에서만 발기부전·지루 등이 나타나는 심리적 원인의 성기능 장애 환자들이다. 그들은 실제로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못난 점이 송두리째 상대에게 노출될까 하는 불안에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상대 탓만 하며 결국 성생활마저 기피한다. 또 심각한 마마보이를 분석해 보면 부모가 침대 위에서 성행위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무의식적 불안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노출불안은 ‘또 안 되면 어쩌나’ 하는 수행불안과 함께 성기능 장애의 심리적 원인 중 대표적인 것이다. 가벼운 경우야 불안요소를 개선하면 쉽게 해결된다. 심한 경우는 일반 심리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지만 성의학적 견지의 심리치료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전문가라면 치료예후는 아주 좋다.

부부의 침실은 남들 다 훔쳐보고 방해받는 그 옛날의 신방과 달라야 한다.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밤, 마을 외곽 은밀한 물레방앗간에 빗대는 게 차라리 옳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도 그 물레방앗간에서 나눈 연분을 두고두고 잊지 못했던 것은 그 소중한 순간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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