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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대미술 한국 나들이…국립현대미술관서 23일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새롭다는 것이 일본인들의 아이덴티티처럼 보일 때가 많다.

동양 것이든 서구 것이든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데 일본인만큼 머뭇거리지 않고 적극적인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일본미술사가 오카쿠라 덴신 (岡倉天心) 은 일본미술의 역사를 '잇달아 밀려온 동양문화의 물결이 민족의식에 부딪쳐 모래 위에 자취를 남기고 간 해변' 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분히 아시아 문화의 '수용' 이란 측면에서 한 말이다.

현대미술을 받아들인 것은 어떤가.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현대미술도 일본적이다.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의 수석큐레이터 치바 시게오 (千葉成夫) 는 일본현대미술을 '근대의 극복과정이었다' 고 말하고 있다.

전쟁전 서구를 수용해서 아류를 만들어 냈던 구체제 (舊體制) 미술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길 역시 서구 현대미술의 수용을 통해 이뤄져, 진정한 분가 (分家)가 이뤄졌는가에는 의문을 표시했다.

한국에서 일본은 좀처럼 알아차리기 어려운 존재다.

정보부족, 의식적 기피나 거부감등.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이 일본현대미술을 소개했다.

(23일까지 02 - 503 - 9676) 소개작가는 50대에서 30대까지 걸친 16명. 이처럼 대규모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일본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이 일본인 큐레이터 (치바 시게오)에 의해 꾸며진 것처럼 이번엔 우리 큐레이터가 3년간 5차례의 일본방문을 통해 작가를 선정했다.

일본이 보여주고 싶은 것보다는 우리가 보고 싶은 일본의 현대미술을 가져온 것이다.

큐레이터 최은주씨는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일본이 현대미술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궁금했다" 고 말한다.

과천에 온 일본현대미술을 한두 경향으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굳이 묶어본다면 우선 물체의 속성과 거기서 연유한 형태에 대한 흥미가 두드러져 보인다.

또 현대문명의 패러디도 관심이 크다.

커다란 나무토막의 가운데를 파내 삶과 죽음의 세계를 은유한 토야 시게오나 초록색 배를 만들어보이는 코시미즈 스스무, 돼지가죽으로 소라형태를 제시해보인 키타야마 요시오, 그리고 종이접기를 보는듯한 에가미 케이타의 작업들은 전자에 속한다. 널리 알려진 것을 모방하는 패러디 계열로는 만화 캐릭터를 이용하는 무라카미 다카시, 명화를 재구성하는 작업의 후쿠다 미란 등을 묶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향으로 전부를 묶을 수는 없다.

금분을 롤러로 밀어 산수화와 같은 분위기를 내는 나카가미 키요시, 개미가 파들어 가 국기형태가 변하는 모습을 작품화한 야나기 유키노리, 그리고 가짜눈썹으로 드로잉을 그린 카사하라 에미코 등의 작업은 개성적이다.

그런데 일본현대미술 속에는 지나치게 일본적 표현이 강하다.

장식성.장인적 완결주의 등이다.

치바 시게오가 분가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 (9월23일 국립현대미술관 심포지엄) 한 것이 이를 두고 한 말처럼 해석되는 전시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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