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익는 마을]5.함양 국화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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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오는 10일은 음력으로 9월9일. 양 (陽) 의 최고 숫자인 9가 겹쳐 양기가 가장 왕성하다는 중양절 (重陽節) 이다.

중양절 세시음식의 압권은 국화주였다.

이날 양반들은 국화주를 들고 산위에 올라 풍즐거풍 (風櫛去風) 을 했다.

'풍즐' 은 상투를 풀어 산바람에 머리를 날림이요, '거풍' 이란 바지를 벗고 몸을 태양에 노출시키는 행위. 풍즐거풍은 몸밖의 음기를, 국화주는 몸안의 음기를 몰아내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경남함양군은 예전부터 '좌안동 (左安東) 우함양 (右咸陽)' 으로 불릴 정도로 양반이 많았던 고장이다.

정자.누대만 1백50여곳. 풍류를 즐기던 양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지리산을 마주하고 있는 함양읍삼산리 술도가에서 '지리산 국화주' 가 빚어진다.

이 술은 함양출신 김광수 (41.지리산국화주 대표) 씨가 동의보감을 토대로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난 89년 민속주로 지정받았다.

재료는 해마다 10월 지리산에서 피어나는 야생국화 감국 (甘菊) . "신라때도 국화주가 있었어요. 국화주는 일제시대에 맥이 끊겼다가 다시 살아난 술입니다.

" 상림 (上林)에서 만난 민을봉 (80) 씨는 "고운 (孤雲) 최치원 (崔致遠) 선생도 국화주의 부활을 축하할 것" 이라며 웃음짓는다.

상림은 신라말 천령군 (天嶺郡.지금의 함양) 태수였던 최치원이 손수 가꾸었다는 숲. 1.6㎞에 걸쳐 나무가 빽빽한 이 숲은 요즘 애주가들로 붐빈다.

개미가 싫어하는 때죽나무가 군데군데 심어져 술마시기에 좋은 장소다.

국화주는 알콜농도가 소주보다 약한 16%.달짝지근한 맛과 은은한 국향이 가을을 담고 있다.

"함양은 앞으로 생수의 고장으로 불릴 겁니다.

요즘 계곡의 생수를 채취하려는 기업들의 각축전이 치열해요. " 강석봉 (38) 씨는 함양의 맑은 물 자랑에 시간가는줄 모른다.

지리산등 1천 이상의 고산 (高山) 6개가 둘러싼 함양. 울고 왔다가 울고 가는 양반들의 대표적 유배지였다는 함양이다.

처음엔 두메산골로 왔다는 설움에서 울고, 떠날 때는 '맑은물 푸른산' 이 아쉬워 울었다던가.

당시부터 국화주는 세상사의 시름을 덜어주고 양기를 북돋우는 술이었다.

송명석 기자

<국화주란‥>

▶특징 = 술맛이 꿀을 약간 섞은 것처럼 달짝지근하다.

음주후 머리를 아프게하는 아세트 알데히드등의 성분이 다른 술에 비해 적게 검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료.효능 = 찹쌀.야생국화.생지황.구기자등이 사용된다.

빚는 기간은 총 20일. 야생국화등을 달인다음 찹쌀이 발효된 술과 섞어 15일간의 숙성시킨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국화주는 청혈.해독의 약리작용이 있어 고혈압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격.문의 = 5천원 (4백㎖)~2만1천원 (1천㎖) .지리산국화주 (0597 - 62 - 7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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