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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재미 통상전문 김석한 변호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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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미국은 이번에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더 손해고, 진짜 협상은 이제부터인만큼 가능한한 시간을 오래 끌며 느긋하게 협상을 벌여나가야 한다.

미국의 진짜 목적은 한국 자동차업계의 증산계획을 억제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활동하고 있는 金석한 재미 통상전문 변호사는 미국의 한국자동차 시장에 대한 슈퍼 301조 발동과 관련, 여러가지 귀담아 들을만한 정보와 시각을 갖고 있었다.

미국이 슈퍼 301조를 발동한 다음날 金변호사를 만났다.

- 미국은 왜 한국에 슈퍼 301조를 발동했다고 보는가.

"오늘 아침 미 행정부의 한 핵심인사에게 나도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그는 첫째 패스트 트랙 (Fast Track) 때문이고, 둘째 한국이 애초부터 협상을 타결지으려는 자세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패스트 트랙 : 신속한 통상협상을 위해 행정부가 법안을 제안하면 의회가 조항 수정을 하지 않고 가부만 결정토록 하는 제도)

- 이번 결정이 상당부분 미 국내 정치의 산물 (産物) 이란 이야기인데….

"그렇다.

한국이 미 국내 정치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현재 빌 클린턴은 패스트 트랙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기묘하게도 공화당과 손잡은채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이었던 노동계.민주당내의 급진파들과는 노동.환경 이슈의 반영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여기에 내년에는 의회 선거가 있으니 통상협상을 놓고 외국에 강하게 나가야 노동계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96년 선거를 앞두고 클린턴이 일본과의 자동차협상에서 거세게 나갔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에 패스트 트랙만 아니었으면 미국은 슈퍼 301조를 발동하지 않았으리라 본다."

- 미 자동차업계의 대 (對) 의회.행정부 로비도 매우 거셌는데.

"미 무역대표부 (USTR)가 이번에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내가 지적하는 이유가 바로 그 대목이다.

미 자동차업계는 애초부터 95년의 한.미 자동차 양해각서 내용 이행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최대 관심은 한국 자동차업계의 증산계획이었다.

과거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의 세계시장 진출 전략이 기억에 생생한 미 자동차업계는 한국의 자동차회사들이 계속 생산능력을 늘리는 것을 '미래의 큰 위협' 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부터 미리 견제하지 않으면 큰일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USTR도 다 알면서 이런 저런 명분을 내세워 슈퍼 301조를 발동한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 미국으로서는 잘한 일 아닌가.

"미국으로서도 좋지 않은 결정이었다.

미국에는 자동차 이슈가 작은 일이지만 한국에는 큰 문제다.

이번 일로 한국에서는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고 대선 과정에서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미 행정부 내에서도 국무부.안보팀.재무부는 이같은 이유로 이번에 슈퍼 301조 발동을 반대했었다."

- 미국이 내건 명분에는 허점이나 모순이 없나.

"매우 많다.

우선 한국의 자동차 세제를 문제삼고 있는 미국의 자동차 세제를 보자. 미국도 90년 3만달러 이상의 차에 대해 사치세를 신설했고 78년부터는 휘발유가 많이 드는 차에 대해 세금을 더 무겁게 물려왔다.

94년 유럽연합 (EU) 이 이 두가지 세금을 문제삼아 세계무역기구 (WTO)에 제소했을 때 미국은 어떤 논리를 폈는지 아는가.

사치세와 관계없는 3만달러 이하짜리 차를 수출해도 되는데 3만달러가 넘는 차를 수출한 것은 EU 자기네가 좋아서 한 것이고, 연료 효율이 낮은 차에 매기는 세금은 미국차든 유럽차든 차별없이 매겨지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런 논리로 미국은 WTO 제소에서 이겼다.

그런 미국이 우리의 세제를 문제삼고 있다.

또 한국에 8%인 자동차 관세를 내리라고 하는데, 그럼 유럽 현지에 진출한 미국의 빅3들은 왜 10%인 EU의 관세 덕을 보며 장사하고 있는가."

- 한국으로서 바람직한 대응방향은.

"과잉반응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지금까지는 '사전협상' 이었고 이제부터가 '정식협상' 이라고 보면 된다.

또 미 자동차업계의 진짜 목적은 삼성등의 생산 계획을 늦추게끔 하려는 것이므로 앞으로의 협상을 빨리 끝낼 필요도 없다.

협상이 빨리 끝나면 미 업계는 또 무언가 문제삼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한한 협상을 끌면서 새 모델 개발등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만일 WTO에 제소한다면 그 시기는 미국의 보복조치가 나왔을 때가 좋다.

시간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국도 이같은 통상협상에서 밀리지 않을 명분은 갖춰야 할텐데.

"외제차 소유자에 대한 세무조사나 소비절약 운동등과 관련해 미국은 한국 정부를 잔뜩 의심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은 설득력 있는 입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또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이 1%도 안된다는 것은 미국 아니라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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