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취업난 현황…"대졸 4명중 3명 갈곳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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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취업시즌이 다가온 가운데 올해는 사상 최악의 취업대란을 겪을 전망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등을 다 합쳐 채용인원은 올 하반기 8만명 정도가 예상되나 취업희망자는 32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여 약 4대1의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 취업대란, 일할 곳이 없다 = 9월30일 오후3시 연세대 학생회관 2층. 한화그룹등 4개 그룹이 마련한 취업상담장에는 면담차례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섰다.

취업준비중인 국문과 4학년 강희룡 (姜熙龍.25) 씨는 "설명회마다 사람이 넘치는등 취업열기가 뜨겁다" 고 말했다.

취업상담중이던 한화기계 인사팀의 박영곤 (朴永坤) 씨는 "갈수록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진다" 며 "그룹의 총 채용예정인원이 4백50명인데 이미 연세대에서만 5백여장의 원서가 나갔다" 고 말했다.

'4명중 3명은 취업에 실패한다' 올 하반기 대졸취업의 예상결과다.

불황의 여파가 취업전선에도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취업정보지 리크루트에 따르면 군입대.유학.대학원 진학을 제외한 내년2월 대학졸업 예정 취업희망자만 17만2천명. 여기에 취업재수생 12만5천명과 재취업 희망자 2만명을 합치면 31만7천명에 달한다.

그러나 50대 그룹의 하반기 공채규모는 1만6천명선이고 중소기업들도 3만5천명이 한계다.

교직.공기업.외국계기업 2만8천명을 합쳐도 7만9천명.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었다는 지난해에 비해 취업희망자수는 4만7천명이 늘었지만 채용규모는 1만명이 줄어 올해는 더욱 취업문이 좁아질 전망이다.

리크루트의 유재흥과장은 "요즘엔 취업빙하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이른바 명문대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서울대는 개교이래 최초로 오는 7~8일 70개 업체가 참가하는 채용박람회를 열기로 했고 연세대.고려대등도 채용박람회를 개최했거나 준비중이다.

중위권 대학과 지방대학, 여대생들에게는 취업문이 그야말로 바늘구멍. 이들은 채용규모가 줄면서 학생 개개인의 능력보다 출신대학.전공을 따지는 기업들의 관행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동국대 가정교육과 이은주 (李垠朱.23) 씨는 "지난해 30명의 과선배들중 취직한 선배는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인데 올해는 원서구경조차 힘든 지경" 이라며 "올해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 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다" 고 말했다.

대전 배재대 취업정보실의 이은국 (李殷國) 계장은 "지난해에는 지방대학으로는 높은 수준인 70%의 취업률을 보였지만 올해는 지역경제의 침체로 일부학과를 제외하면 취업률이 55%정도에 머물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지방대학들은 지역연고기업을 대상으로 한 채용박람회 개최도 추진중이다.

◇ 채용대란, 인재 구하기 어렵다 = 컴퓨터 부품을 만드는 벤처기업인 ㈜가산전자의 채용담당자인 최재현 (崔在鉉) 총무과장은 "취업난이라지만 우리는 여전히 구인난" 이라고 잘라 말한다.

崔과장은 "지난 6월 1달동안 서울소재 6개대학을 돌며 채용설명회를 열어 겨우 8명을 충원했다" 며 "11월에 20명의 연구.개발직을 뽑을 예정이지만 자신이 없다" 고 말했다.

취업희망자들이 넘쳐 나지만 기업들의 걱정도 많다.

기업들은 정보통신.건설등 수익성이 좋거나 투자가 집중되는 분야의 관련 전공자를 찾는데 비해 취업희망자들의 전공분포가 이에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의 경우 올 하반기에 뽑을 3천2백명의 신입사원중 80%가 넘는 2천6백명이 이공계. 이중 현대전자 한 회사가 1천8백명을 충원하며 그중 절반인 9백명이 반도체 분야에서 필요한 인력이다.

삼성.LG.대우등도 이공계 출신을 70~75%정도 채용할 예정이다.

인력수요가 많은 사업분야도 한결같이 전자.정보통신분야다.

그러나 대학에서 배출되는 이공계 인력은 상대적으로 적다.

96년 기준 국내 대학생중 자연계의 비율은 48%.이중 의.약학계와 사범계를 제외하면 취업가능한 이공계 대졸자는 더욱 줄어든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이공계, 특히 전자.정보통신 관련 전공자들을 모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그나마 인지도와 자금력이 앞선 대그룹들이 명문대 이공계 출신자에 대해 산학장학생 제도.상시채용등을 통해 일찌감치 입도선매에 나서고 있어 중견그룹이나 중소.벤처기업들의 구인난은 더욱 심하다.

그런가하면 대그룹들은 각 대학과 정.재계에서 쏟아지는 '취업철 청탁' 때문에도 골치를 앓는다.

우수한 인재를 공정하게 선발하기 위해 필기시험을 폐지하고 많은 비용을 들여 적성검사와 다양한 면접을 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탁' 은 받아들일수 없는 일. 급기야 지난달 30일 구본무 (具本茂) LG그룹 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인재 채용은 그룹 경영의 성패를 가르는 중대사' 라며 인사청탁 배제를 공식선언하기까지 했다.

이승녕.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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