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Q] 盧대통령과 수도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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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그 감자를 10년 동안 삶아왔다.

1988년 청문회에서 5공 비리를 파헤쳤던 노무현 초선 의원(민주당)은 92년 3월 14대 총선 때 부산에서 5공인사 허삼수 후보(민자당)에게 패했다. 노 의원은 이를 악물었고 자신이 정치인생에서 추구할 3대 개혁 화두를 정했다고 한다. 금융실명제.토지공개념, 그리고 지역주의 해소를 포함한 지방분권화였다.

노 위원장(원외)의 구상은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YS)에게서 타격을 받았다. YS가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오랜 측근 C씨는 회고했다. "노 위원장은 금융실명제를 반기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워했습니다. 자신이 세금전문 변호사 출신이어서 누구보다 금융실명제를 잘할 수 있을 것이란 야심을 키웠는데 그만 목표가 없어진 것이지요."

3대 화두 중 남은 것은 지방분권화였다. 노 위원장은 여기에 승부를 걸었고 93년 10월 여의도에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었다. 노 위원장은 수많은 지방개발론자와 대화하면서 행정수도가 지방분권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굳혀나갔다고 한다. 그는 연구소의 지방자치학교에서 "미국의 정치수도는 워싱턴, 경제수도는 뉴욕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노 위원장은 이 무렵 '지방화.행정수도' 동지들을 만들었다. 연구소 소장을 지낸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 위원장을 지내다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발탁됐다.

2002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자마자 노 후보는 당 국가전략연구소의 이병완 부소장(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정만호 정책팀장(전 대통령 의전비서관)에게 지시했다. "지방분권과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행정수도가 꼭 필요하다. 공약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보안 속에서 5개월여 작업이 진행됐고 그해 9월 30일 공약이 나왔다.

'노무현의 행정수도'라는 삶은 감자는 그러나 세상에 나온 지 1년9개월이 되도록 식을 줄 모르고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이 감자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감자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노 대통령은 입을 크게 델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고 있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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