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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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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을 천붕(天崩)이라고 한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나는 아버지의 상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이 표현이 옳음을 알았다. 그러나 오늘, 의사의 선고를 듣고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으니 이는 천붕보다 더한 것이다. 6·25 때 두 아이를 잃은 일이 있다. 자식의 어버이 생각하는 마음이 아버지의 자식 생각하는 마음에 까마득히 못 미침을 이제 세 번째 체험한다.”(류달영 ‘슬픔에 관하여’)

자식을 먼저 잃는 일을 참척(慘慽)이라 한다.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그 참혹한 슬픔을 헤아리랴만 문인들이 남긴 글을 통해 짐작이나마 해볼 따름이다. 박완서는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고 썼다. 박완서는 남편 잃은 지 석 달 만에 예비의사 외아들을 떠나보냈다. 스스로 미치지 않는 게 저주스러웠던 그는 수녀원에서 20여 일 동안 ‘하느님과 대결하며’ 살았다고 했다.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 하거늘 이 어찌 하늘의 이치에 어긋난 일이 있는가.” 먼저 간 자식과 생사를 맞바꿀 수 없음을 한탄한 이는 충무공 이순신이었다. 둘째 아들을 잃은 고산 윤선도는 “가을바람 불고 달 밝은 밤이면 내 어찌 누각에 오를 수 있겠느냐”며 창작의 원천이던 음풍농월(吟風弄月)을 끊었다.

서양인도 다를 게 없다. 록 가수 에릭 클랩턴은 네 살 난 늦둥이 아들을 사고로 잃고는 술과 마약에 탐닉했다. 환각의 힘이라도 빌려 아들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자학적 삶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왕년의 히트곡 ‘천국의 눈물(Tears in Heaven)’은 그런 사연을 담은 노래다.

여기 한 아버지가 있다. 그는 경찰관 아들을 시위현장에서 잃었다. 자나깨나 아들 생각에 사무칠 뿐이다. 그 때문에 접촉사고를 두 번이나 내고 생업인 개인택시 운전마저 접어야 할 판이다. 그런 그가 용산 철거민 분향소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찾아가 조문했다. “유족들이 풀 죽어 앉아 계시는 걸 보니 내 일처럼 가슴이 찢어집니다. 우리 남훈이는 49재도 지내는데….”(본지 3월 10일자 8면) 인지상정으로는 아들 목숨 앗아간 장본인들이라고 원망할 법도 하련만 오히려 그들을 걱정했다. 그 한없는 자비심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류달영이 ‘슬픔에 관하여’에 쓴 문장이 빈말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슬픔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영혼을 정화(淨化)하고 높고 맑은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 아닐까.”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