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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현실 속 숨어버린 ‘진실찾기’

중앙일보

입력

경찰서 취조실. 두 연극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건 재구성에 들어간다. 사건현장과 취조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한 꺼풀씩 벗겨지는 사건의 전말. 그 속엔 고단한 현실, 암울한 시대와 마주한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삼도봉美스토리

농촌문제 꼬집는 시사풍자극

 “그 숭악헌 것을 왜 짱 박아유?” “진짜 대가리는 읎었어예!” “대그박은 읎었지?” “대갈빼기는 읎었대요.”

 머리가 잘려나간 끔찍한 살인사건용의자로 4명이 붙잡힌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삼도봉(三道峰) 미국산 양곡창고. 삼도봉은 경상도·전라도·충청도가 만나는 지역이다. 전라도 열혈 농민운동가 갈필용, 순진한 경상도 노총각 배일천, 충청도 마을 이장 노상술, 다혈질의 강원도 노총각 김창출은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무한친절 상황재연’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4인이 쏟아내는 4색의 사투리와 구수한 입담은 코믹 스릴러물의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그러나 이들의 사연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객석은 숙연해진다.

 갈필용은 쌀 개방 반대 시위현장에서 전경으로 차출된 아들을 잃었다. 배일천은 국제결혼 사기를 당해 재산을 날렸다. 노상술은 법을 잘 몰라 30년 살던 집을 잃었다. 김창출은 해마다 태풍 피해를 보았다. 농촌 문제에 뾰족한 대책이 없기는 현실이나 무대나 마찬가지다.

 ‘미제 사건’이란 결말이 싱겁긴 하지만 오랜만에 등장한 시사풍자극이란 점만으로도 반가운 작품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연극에서 ‘배경’에 불과했던 농촌을 사건의 중심에 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삼도봉미스토리’의 ‘미(美)’는 쌀과 미국을 의미한다. ‘대가리’ ‘대그박’ ‘대갈빼기’로 변주되는‘머리’는 사람의 머리를 뜻하는 동시에 오늘날 농촌을 이 지경으로 만든 윗사람을 지칭한다.

 김신후 작, 고선웅 각색·연출. 오픈 런.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3만원.
문의 02-766-6007

▶ 사진제공=연극열전

청춘 18대1
열혈 청춘들의 무모한 도전

 “폭탄이 터지기 직전 강대웅이라는 자가 너를 밀쳐냈다? 너를 살리기 위해서?”

 일본인 취조관은 테러 사건이 터진 댄스홀에서 이토에(한국명 윤하민)가 유일하게 살아남게 된 이유를 다그친다. 극은 윤하민의 진술을 바탕으로 역순으로 진행된다. 해방을 한 달여 앞둔 1945년 7월 12일. 도쿄대학 유학생 김건우와 도쿄의 일급 댄서인 한국계 입양아 윤하민은 도쿄 경찰청장 암살 계획을 세운다. ‘댄스광’인 청장을 댄스홀로 끌어들인 후 폭탄을 터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우가 자신을 추적하던 형사의 총에 맞아 숨지면서 일은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테러 계획에 다시 불을 지피는 것은 일제 징용을 피해 도쿄로 건너온 강대웅과 정윤철·기철형제, 그리고 댄스홀의 여급 순자와 건우의 일본인 아내 나츠카다.

 건우와 달리 이들에게 ‘독립운동’과 같은 거창한 신념이란 없다. 죄책감·형제애·사랑이 전부다. ‘18대1’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자칫 무모한 도전을 가능케 한 것은 이들이 피가 뜨거운 청춘들이어서다. 마지막 반전은 가슴을 후벼판다.

 독립운동이자 사랑을 상징하는 춤, 아코디언·클래식기타·클라리넷 등 다양한 악기의 라이브 연주가 연극적인 재미 이상을 준다. 차차·왈츠·탱고, 절반이 넘는 일본어 대사를 매끄럽게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연극계 콤비인 서재형(연출)-한아름(작가) 부부가 호흡을 맞췄다. 지난해 초연 당시 호평을 받았으나 배우(이진희) 부상으로 조기에 막을 내렸던 작품이다.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2만5000원.
문의 02-708-5001
▶ 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프리미엄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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