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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서]12. 끝. 포항 계원리 포구…동해 제일의 해녀마을(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바닷끝 한자락이 둥글게 휘어든 곳에 터를 내렸다.

병풍처럼 두른 언덕에 야트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건너편 양포항에 비해 선착장과 방파제는 코딱지만하다.

포항 동남쪽 바닷가에 자리잡은 동해안 최고의 해녀마을로 알려진 계원리 (경북포항시장기면계원1리) 포구. 제19호 태풍 '올리와' 가 비켜갔지만 아직도 높은 파도가 쉴새없이 방파제를 넘어 마을앞까지 들이친다.

태풍의 뒤끝이라 해녀들은 물질을 하러 나갈 엄두도 못낸다.

반농반어 지역인 계원리는 총 1백20여가구중 절반이 바다에 기대어 산다.

그 가운데 전복.소라.앙장구 (말똥성게).미역.우뭇가사리등을 채취하는 해녀들의 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해녀가 제주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예. 바닷가 마을이면 어디나 물질하는 사람들이 있지예. 그러나 그들이 다 해녀는 아입니더. 적어도 10 바닷속에 들어가 일을 해야 해녀로 꼽힙니더. " 23년간 물질을 하고 있는 고영자 (44) 씨의 이야기다.

'해녀의 메카' 로 알려진 제주도에서도 성산포가 그녀의 고향이다.

그녀는 고향에서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곁눈질로 물질을 배웠다.

그러다 20여년전 이 마을로 시집와 비로소 본격적인 물질을 시작했다.

"세상에 어디 쉬운 일이 있을까마는 물질만한 것도 없을낍니더. 물속세계는 아름답기는 하지예. 그러나 하나라도 더 캐려고 욕심부리다 보면 중간쯤 올라오다 숨이 콱 막히지예. 그래서 물위에 올라오면 사지에 힘이 쫙 빠집니더.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이짓을 하나 하는 생각이 안듭니꺼. " 라며 물질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허리에 4~5㎏의 납덩어리를 차고 하루 5~6시간의 중노동을 며칠만 계속하면 몸무게가 쫙 빠진다.

일을 마치고 식사할 때는 입이 따가와 매운 것을 먹지도 못할 정도다.

이들은 카메라에 나서기를 싫어한다.

몸매가 드러나는 잠수복 옷을 입은 것도 한 이유다.

그것보다는 천직 (賤職) 이라는 고정관념이 더 크다.

유능한 해녀는 수영을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잠수에 능하고, 눈이 밝아야 하며, 물속에서 캔 것을 물위로 안고 잘 올라와야만 1급해녀로 꼽힌다.

장비는 '오리발' , 부력을 이용해 가슴에 안고 헤엄치는 '태왁' , 채취물을 담는 '망사리' , 전복등을 잡는 '갈고리' 가 전부다.

해녀일이 아직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 베적삼 물옷이 검은 고무 잠수복으로, 생명줄인 '조롱박태왁' 이 스티로폴로 바뀐 것이 전부다.

30년전만 해도 육지사람들은 제주에서 해녀를 모집해 작업을 시켰다.

이렇게 원정조업을 온 일부 해녀들은 뭍에 정착했다.

그래서 전국 바닷가 어디를 가나 제주 해녀출신들을 만날 수 있다.

계원리에도 열댓명의 제주출신 해녀가 뿌리내리고 산다.

"해녀는 이제 3D업종중의 하나가 됐뿐기라예. 가장 나이 어린 막내라 해도 40세가 훨씬 넘거든예. " 김종상이장의 이야기다.

이 마을 해녀중 고영자씨가 가장 어리고 올해 68세의 한종금할머니가 최고령자다.

2년전만 해도 이들 해녀들이 벌어들인 연간 조업소득은 약 4억원. 부지런한 사람은 1천5백만원정도의 소득을 올렸다.

이들이 1년에 일하는 기간은 60일 정도. 작업일수로만 계산한다면 대단한 수익이었다.

그러나 이래저래 좋은 시절은 다갔다.

환경오염으로 수익성 높은 전복.성게등은 씨가 말라간다.

여기에 값싼 외국 해산물의 수입이 어려움을 더해준다.

해녀들이 내뿜는 숨비질소리 (물에 솟아올라와 숨을 고르기 위해 '호오이' 하는 소리) 도 파도에 파묻혀 버릴 날이 멀지 않은 듯싶다.

글.사진 =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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