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씨등 9人 공동테마 소설집 '꿈꾸는 죽음'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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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사랑과 더불어 죽음은 모든 예술의 영원한 주제이다.

그 죽음이 있으므로 해서 예술은 끝간데 없는 깊이를 지닐 수 있고 삶에 대한 그만큼의 의미와 위안을 줄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들은 죽음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가.

젊은 작가 9명이 최근 죽음을 공동 주제로 단편 한편씩을 새로 써 '꿈꾸는 죽음' 을 펴냈다 (문학동네刊) .20, 30대의 소위 '신세대작가' 들이 나름의 체험과 상상력, 소재를 동원해 죽음을 다루고 있어 요즘 젊은이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생관 (死生觀) 을 들여다 볼수 있게 한다.

한창훈씨 (34) 는 '가던 새 본다' 에서 우리 민족에게 익숙한 연기설 (緣起說) 로 삶과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어려 종살이로 부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낸 할매가 이제 죽을 때가 다 됐는지 밤마다 저승사자한테 사설을 늘어놓는다.

한씨 특유의 해학과 토속적 문체로 풀어지는 사설은 조금도 두렵거나 구차스럽지않다.

"할매는 어렸을 적 종살이하듯 저승에서 이승으로, 몇뼘의 육신에 영혼이 유배 당해 험난한 일생을 독을 빼고 이제 다시 맑은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지도 몰랐다.바리데기처럼 길고 긴 여정을 이제 서서히 끝내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밤새도록 저승사자에게 또 사설을 늘어놓던 할머니가 다음날 텃밭에 거름하려 똥을 푸는 장면을 드러낸 부분이다.

사람의 독을 뺀 똥이 거름이 돼 다시 푸성귀를 길러 푸성귀의 일부가 되듯 이.저승의 구분없이 그 세계를 돌고도는 순환적 고리로서 죽음을 편안하게 파악하고 있다.

김이정씨 (37) 는 '수의 (壽衣)' 에서 한 (恨) 의 맺힘과 풀림으로 삶과 죽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웠던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낸 젊은 여자의 공허한 가슴에 아버지의 부고가 날아든다.

종가집 종손의 첩의 딸인 자신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막상 본처가 남편인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와의 살림을 위해 집을 비운 30년간이라는 세월을 삭이며 지은 수의를 다리면서 젊은 여인은 한과 한의 삭임의 의미를 깨달으며 용서와 사랑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강규씨 (33) 의 '금 여름 - 불망 (不忘)' 도 죽음을 통한 신생 (新生) 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낯선 곳에서의 낯선 남녀의 섹스라는 가상적 죽음이다.

각기 아버지와 형수의 죽음의 상처를 안고 온천마을로 여행 온 젊은 남녀. 자신의 가슴 속에 각인된 죽음의 정조를 이야기하며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인인양 자연스레 관계를 갖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30대 작가들의 작품이 전통적인 죽음관을 내비치고 있는데 비하여 20대 작가들의 그것은 좀더 새롭고 모호하고 과격하다.

백민석씨 (26) 의 '믿거나 말거나 박물지 두개' 는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세상의 속도, 그 혼돈의 세계를 죽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상상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다 생산해낸 인류는 이제, 인류가 상상해낼 수 없는 것들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 때문에 '캘리포니아 나무개' 라는 황당한 동물을 내세워 황당하게 이야기를 이끌면서 소설 속 화자 (話者) 마저도 "지금 내가, 뭣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겠다" 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작가는 생산의 속도가 너무 빨라, 의미의 속도를 추월하는 '의미 없는 현대' 가 곧 카오스요 죽음임을 말하고 있다.

"어쩌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라고 끊임없이 묻는 무장탈영 인질범을 다룬 김영하씨 (29) 의 '총' 도 현대의 무반성적 삶, 그리고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삶이 곧 죽음임을 드러내주고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송경아씨 (26) 의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는 기성세대 전체의 죽음을 통해 전혀 새로운 별세계를 꿈꾸고 있다.

서울 상공에 매일 날아드는 UFO로 부터 지령을 받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를 모두 십자가에 메달아 목을 잘라 살해한다.

하나님이 대홍수를 일으켜 기존 세상의 악을 모두 쓸어내고 노아의 방주로 순결한 혼만 살렸듯 젊은이들이 앞으로 도래할 깨끗한 세상, 문명을 위해 살해를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삶에는 희망이 수놓여 있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고 하는 화자를 통해 끔찍한 전율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삶에 대한 반성을 통한 의미를 추구하기 보다 전통.기성.가정 그리고 세상의 의미와 단절되려는 신세대들의 의식의 일단인지, 아니면 그런 신세대에 대한 경계이든지 간에 사뭇 끔찍하고 두렵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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