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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기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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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보랏빛 도는 회색 스웨터는 누이 솜씨일까, 두툼한 가방을 든 청년이 수줍게 웃고 있다. 짙은 눈썹, 맑은 눈동자. 아직 덜 여문 턱과 어깨엔 소년의 태가 남아 있다. 기형도(1960~89), 그는 지금 연세대 79학번 신입생이다. 훗날 한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 될 운명인 그는, 광명시 소하동 변두리의 돼지 치는 집 막내아들이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10년째 자리 보전 중. 그래도 어린 날은 다락방 속 헌 책들로 인해 행복했다. 초·중·고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그에게 유일한 ‘사교육’은 독서였다.

그의 꿈은 시인이다. 국문과가 아니라 정치외교학과를 택한 건 치우침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문학 하는 사회과학도인 그는 책과 연애를 한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릴케와 엘리어트를, 노자와 장자를 밑줄 쳐 가며 꼼꼼히 읽는다. 성적이 좋아 장학금을 받는다. “빨강·파랑·검정 세 개의 볼펜을 번갈아 쓰며 야무지게 공부한다”(‘예스24’ 창업자 이강인). 누구든 원하면 선뜻 공책을 빌려준다. 잘 웃고 노래 솜씨도 일품이다. 여름이면 파리가 메뚜기떼처럼 몰려드는 돈사 옆 제 방으로 거리낌 없이 친구들을 불러들인다.

집안 사정을 아는 과 친구들은 고시 공부를 권한다. 그는 못 들은 척한다. 84년 중앙일보 기자가 되고,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89년 3월 7일 돌연사한다.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24만 부가 팔렸다. 누이 기애도는 그의 삶을 이렇게 가름했다. “아우는, 열심히, 치열하게, 거의 완벽하게 자기 몫을 살았다. 섬세하고 어진 맘의 소유자였지만 강인한 두뇌를 갖고 있어서 곰삭은 분노를 부드럽고 멋지게 노래할 줄 알았다.”(유고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머리말 중).

20주기에 새삼 그의 죽음이 아닌 청춘을 말하는 건 기실 부러워서다. 징그럽게 가난했지만 독서와 노력으로 명문대에 입학했다. 경계 없는 지적 탐구로 세대를 뛰어넘는 문재를 닦았다. 고통스러운 삶의 조건을 방향 없는 출세욕이 아닌 인생을 건 꿈의 동력으로 삼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떨까. 입학과 함께 취업 준비부터 시작한다. 학문 대신 영어를 파고든다. 부모·사회는 물론 대학마저 이를 정당화한다. 뿔난 서남표 KAIST 총장이 칼을 빼 들었다. 오직 잠재력만으로 신입생 150명을 뽑겠다고 선언했다. 서 총장이 원하는 건 아마, 지적 호기심 넘치며 누가 뭐라든 자기 꿈에 자부심 있는 눈 맑고 뜨거운 청춘이 아닐는지. 30년 전 기형도처럼 말이다.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