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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로잡은 테마]베토벤 연구…정치경제학적 비판 음악에 적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 여름 6.10항쟁 10주년을 기념하는 범국민적인 의식 (儀式) 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물론 약간의 후일담이나 무용담도 곁들여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오늘의 현실에서 80년대의 투쟁을 기억하는 올바른 방식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온갖 논쟁의 지반을 바꿔버린 포스트주의적인 '허약한 사고' 또는 '미학적 종말론' 이 80년대 이론에 대해 올바로 반성하는 방식이 될 수는 없다.

사회과학자인 내가 베토벤에 관심을 둔 것은 이같은 세기말적인 '니힐리즘' (니체) 또는 '문화의 질병' (프로이트)에 반대하여 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적 비판을 문학과 음악의 영역에까지 일반화해보기 위해서였다.

이때 베토벤은 이성으로서의 로고스와 접합된 정념 (情念) 으로서의 미토스 (mythos) 로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라 판단했다.

얼마전에 내가 편역한 메이너드 솔로몬의 '베토벤 : 윤리적 미 또는 승화된 에로스' (도서출판 공감刊) 는 베토벤 음악을 주관주의적인 '취미판단' 을 넘어 근대정치사 속에서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20세기초 '장 크리스토프' (특히 5장 '광장의 시장' )에서 로맹 롤랑이 시도했던 작업을 계승하는 일이기도 했다.

롤랑에게서 베토벤의 음악을 근대적 언어로 해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손쉬운 오락이 아니라 '연구' 해야 마땅한 고귀하고 승화된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베토벤이 자신의 반역적 사상에는 전혀 무관심한 채 유명 연주자나 희귀 음반에만 열광하는 오늘의 음악 애호가들을 본다면 무어라 말했을까. 베토벤은 칸트나 헤겔에게서 비롯되는 딜레탕트적 예술관에 반대하여 예술과 과학만이 더 높은 삶에 대한 암시와 희망을 줌으로써 인간을 신의 수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베토벤의 지혜, 또는 지식은 칸트를 전도 (顚倒) 한 괴테 ( '파우스트' )가 아니라 오히려 헤겔을 전도한 마르크스 ( '자본' ) 나 스피노자 ( '윤리학' ) 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다.

이처럼 스피노자나 마르크스와 베토벤 사이의 철학적 친화성에 주목한다면 일체의 반동에 저항하여 근대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프로메테우스적인 베토벤상 (像) 이 부각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해서 80년대 문예운동의 주류였던 소위 '민족음악' 이나 90년대 운동권 출신 포스트주의 평론가들에 의해 복권된 로큰롤이나 재즈 같은 '하급문화' 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윤소영 교수,한신대 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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