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전용카페 성업…주문·대화 모두 일어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다른 나라 말을 배우는 건 돈이 적잖게 든다.

정작엔 쓸 일이 없다.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 몇마디 얘기를 나눌 기회를 잡기도 쉽지 않다.

간혹 거나하게 한잔 들이킨 날은 술기운에 용기를 내 전철 옆자리에 앉은 파란 눈 사내에게 말을 붙여볼라 치면 - .그들은 이미 경험자. 아예 이어폰을 끼고 있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도 슬슬 자리를 피한다.

일본어는 더 막막하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야 대충 눈으로 식별이 가능하지만 일본인은 어디 그게 되나. 일본에 가지 않는 한 별 도리가 없어 보인다.

어디 손쉬운 방법 없을까. 이제, 신촌엘 가자. 카페 '가케하시' (架け橋.가교.02 - 332 - 0505) 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랏샤이마세" (어서오세요) 하는 인사가 반긴다.

당신이 일본어를 알건 모르건 "난닌사마데스카" (몇분이세요) 하며 물어 온다.

여긴 작은 일본이다.

일본 사람들이 모이고 일본 그림이 걸렸다.

인기가수 아무로 나미에의 음악을 들으며 일본 잡지.신문을 읽는다.

도심에 작은 섬나라를 꾸민 이는 김학산 (32) 씨. 어학전문 교육기관 일본어뱅크사에서 일해온 일본통이다.

그는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많은 정성과 돈을 쏟았다.

"가능한 한 일본 현지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생하려 노력했습니다.

인기 만화가 고신타로 (高信太郎) 등 여러 일본인에게 조언을 구했죠. "

혹 일본이 몹시 못마땅한 사람이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왜색의 범람을 걱정하는 이라면 강한 반론을 제기할지 모른다.

왜 하필 일본이냐고. 김사장으로선 그런 시선이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이 카페를 만든 건 반일이니 친일이니 하는 논쟁과는 다른 관점이다.

오히려 현지 실정에 맞게 일본어 연습하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실용적인 취지다.

"일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는, 이를 사용할 계기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막상 일본엘 가도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고민을 털어놓곤 하지요. "

그래서 이 가게에선 음식 주문부터 낯선 사람과의 대화까지 일어로 할 것을 권장한다.

이달초 문을 열자 제일 반가워한 건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일본인.재일교포들. 마음 놓고 대화할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카페나 술집 같은 곳에서 마음놓고 얘기를 못합니다.

처음 한국 와서 멋모르고 큰소리로 말하다 술취한 사람에게 술세례를 받고 험한 욕설을 듣는 등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죠. "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일교포 김영실 (27.여) 씨의 설명이다.

한국사람과 진지한 토론을 원하는 일본친구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도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이곳은 자연스레 양국 젊은이들의 문화교류 현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본어 연습을 위해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대학생 손동희 (22) 군은 "1년간 일어 배운 보람을 이제야 느낀다" 면서 "일본 학생들과 여러 현안에 대해 대화해보고 싶다" 고 말한다.

이제 막 꾸며졌기 때문인지 아직은 일본어를 건네는 모습들이 약간 서먹하다.

여기에 비해 올초부터 속속 생기고 있는 영어전문 카페들은 한층 정착된 느낌이다.

신촌의 '클럽 키세스' (02 - 704 - 2344) 매니저 신경섭 (26) 씨는 "당초 우리말 사용을 못하도록 했으나 이제는 누구나 편안하게 영어를 건네는 상황이라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고 전한다.

대전의 '영어세계 레스토랑' (042 - 222 - 8600) 측도 "외국어 전용 카페에 대한 인식이 어느정도 자리잡은 것같다" 고 설명한다.

우리의 관심 영역이 넓어진 만큼 주변에 이국 공간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게다.

이러한 섬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요즘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지.

강주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