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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만 하는 불륜, 사내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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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얼마 전 난, 오래전 알고 지내던 한 지인으로부터 뜻밖의 이메일, 하지만 내용은 손으로 쓴 편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이메일을 이렇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하다!

'지방공무원으로서 20년을 지냈는데 알다시피 자치단체는 기업과 비슷한 일면도 많고 민선이 되고부터는 학연, 지연, 혈연 등 공식, 비공식적인 줄서기라든지 눈치보기, 사내정치가 좀 더 노골화되는 경향이 있다네.

같은 직급에서 출발해도 승진, 보직에서 많은 차이가 나게 되고 잘되는 사람은 늘 잘되고 밀리는 사람은 늘 밀리고 소외당하는 신세가 되기도 하지. 윗사람에게 찍히면 그 나마의 모든 것을 잃게 되기도 하지.

모르는 사람들은 공무원도 그런가 하겠지만 정도와 횟수의 차이일 뿐 대동소이하다 하겠네. 물론 그만두기 전에는 모든 것을 견뎌야하고 때로는 벼락출세하는 사람도 생기지만, 아마 대부분이 소외라든가 밀려남이라든가 정체라든가 이런 것들을 겪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만.

남는 것은 눈치라든가, 요즘은 선거가 가까워지면 누가 될까 어디 줄을 서볼까를 점치기도 하고 승진 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지. 아부는 기본이고 실력과 출세와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지(반비례는 아니지만)

고향에서 지방공무원 생활을 하지만 그러한 일들에 나도 예외는 아니고 겪을 것은 웬만큼 겪은 것 같네...'

피곤한 푸념처럼 들리는 한 지방공무원의 편지 속에서 여러분들은 사내정치의 현실이 어떠한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완전 공감, 뼈저리게 느끼던가. 난? 당연히, 공감하는 쪽이다. 특히, ‘실력과 출세는 비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반비례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에 확‘ 꽂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위 사례의 Y부장이 얼굴이 붉어졌다고 해서, 그가 사내정치에 가담했다고 단정 지을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단지 심증만 갈 뿐인데, 아마도 결과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내정치를 안 했다고 ‘믿고’ 싶은 쪽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 갈 뿐이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많은 직장인들이 남이 한 사내정치에 관해서는 거품을 물면서 1박 2일이라도 말을 할 태세지만, 정작 자신이 가담한 사내정치에 대해서는 함구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실패한 사내정치에 대해서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아마 자신들이 한 사내정치가 좋은 결과를 낳았다면, 자랑이라도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사내정치를 한 결과 패배자가 되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마디로 ‘ㅇ팔려서’,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 사전에 사내정치는 없다. 난 그런 것 따위에 관심 없다’고 생각하는 여러분들에게 아래, ‘사내정치 가담 여부 자가진단’에 응답을 한 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어떤 항목에도 해당사항이 없다면, 난 당신을 존경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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