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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후보 조순 누구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조순후보는 지난 4일 SBS토크쇼에서 '지행합일 (知行合一)' 이라는 휘호를 썼다.

그의 좌우명이다.

사서오경 (四書五經) 과 당송팔대가 (唐宋八大家) 를 두루 섭렵한 그가 인생의 스승으로 삼는 인물은 삼국지의 제갈공명. 趙후보의 한 제자는 "제갈공명 같이 덕 (德) 과 학문과 국가경영을 동시에 이뤄내는 지식인이 그의 모델" 이라고 소개했다.

반평생 경제학자의 길을 청산하고 노태우 (盧泰愚) 정부의 경제부총리로 관계에 발을 들여놓은뒤 한은총재를 거쳐 초대 서울민선시장에 당선돼 오늘에 이르기까지 적지않은 굴곡이 있었다.

유학자다운 '자기 엄격성' 과 '한다면 한다' 는 옹고집이 그 굴곡과 역경을 헤쳐나가게 하는 무기였다는 평이다.

1928년 강원도명주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강릉 (중앙국민학교).평양 (평양2중학).서울 (경기중학.서울상대)에서 성장했다.

서울상대 전문부 2년동안 영어공부에 매달렸다.

부기 (簿記) 수준의 상과대 수업에 염증을 내고 자퇴한뒤 고향에 내려가 강릉농고 영어교사를 했다.

육군에 입대, 통역장교를 지내다 육사가 창설되자 영어교관으로 옮겨 가르쳤는데 11기의 전두환 (全斗煥).노태우생도와 이때 처음으로 만났다.

29세의 趙후보는 57년 아내와 세아들을 둔채 단신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메인주의 보든대학에 입학신청을 할땐 "나라가 전쟁으로 잿더미가 됐다.

한국의 케인스가 되어 가난을 구제하고자 하니 열혈청년의 뜻을 꺾지 말아달라" 고 자기소개서를 보냈다.

보든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서부의 버클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9년만에 귀국. 39살때인 67년 서울대상대 부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 88년 관계로 몸을 옮길 때까지 '경제원론 (본인 저서)' 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이들은 학계에서 '조순학파' 로 불린다.

趙후보는 순응보다는 자기주장, 복종보다는 소신쪽을 선택해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한은총재 시절 대통령선거를 앞둔 여당및 경제각료들과 사사건건 충돌한 그는 결국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1년만에 중도하차한다.

그는 부총리시절 국회 경제과학위원이었던 김대중 (金大中) 당시 평민당 총재와 인연을 맺어 94년 金총재의 아태평화재단에 합류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95년 6.27 서울시장선거에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됐지만 국민회의 창당때 金총재를 따라가길 거부했다.

서울시장에 취임해 도심혼잡통행료 징수.모범택시제 도입.당산철교 철거등 논쟁적인 사안을 소신있게 밀어붙였다.

비판론자들은 '소신' 이 아니라 '아집' 이며 오히려 우유부단하다고 내리깐다.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경제학자이긴 하지만 경제는 모른다" 는 비판도 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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