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미의 열린 마음, 열린 종교] 5.힌두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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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인 랑그나트 파탁은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요 미래의 시작이라는 ‘업’을 굳게 믿는다. [정대영(에프비전 대표)]

힌두교(Hinduism)를 모르고는 인도를 이해할 수 없다.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이자 인구 10억명에 공식 언어만 18개인 거대한 대륙, 세계에서 종교적 성향이 강한 국가답게 인도에선 힌두교.불교.자이나교.시크교 등 유난히 많은 종교가 탄생했다.

힌두교는 기원전 2000~1500년 아리아인의 북인도 이주와 함께 들어온 바라문교와 인도 고유의 토속신앙이 결합돼 자연 발생한 종교다. 신에 대한 찬가집인 '베다'를 토대로 종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인도인은 6000여명. 그들은 2년 전 서울에 힌두교 사원을 건립하려고 했으나 성사시키진 못했다. 그래서 한국의 힌두인은 각자 집안에 작은 제단을 만들어 기도하며 살고 있다.

랑그나트 파탁. 한국외국어대 힌디어과 교환교수다. 그는 힌두신 가운데 하누만 신을 섬긴다. 하누만은 대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원숭이 신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신이다. 파탁은 아침마다 하누만 신에게 기도를 바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 대신 신이 나서 남을 돕는 힘을 실어달라는 의미의 기도다.

힌두사원 문 위에는 온갖 신의 얼굴 조각상이 하늘 높이 쌓여 있다. 일설에 의하면 힌두신은 3억3000만개에 이른다. 지금도 매일 새로운 신이 태어나 숫자를 불리고 있다. 이토록 다신교 성격이 강하지만 우주의 창조신 브라흐마.유지신 비슈누.파괴신 쉬바가 중심을 이룬다.

"왜 그리 신이 많으냐"고 묻자 그가 "상징일 뿐이다. 장미의 색깔이 달라도 모두 같은 장미인 것처럼 어떤 신을 숭배해도 결국 같은 절대자에게 귀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인도인답게 한국에 온 인연도 카르마(업)로 풀이했다.

"전생에 한국과 관련된 게 있을 겁니다. 아마 내생에도 한국에서 태어날 확률이 높겠지요.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 누구도 윤회를 비켜갈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 지금'의 생은 지난 생의 결과며, 지금 사는 것은 다음 생을 위한 준비다. 인도인의 최대 목표는 살아있는 동안 해탈해 윤회의 바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도 빠뜨릴 수 없다. 인도인은 태어나면서부터 바라문.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네 계급에 속해 신분이 정해진다.

"외국인은 카스트를 오해하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 신분을 따지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같은 인도인을 만나도 출신 계급을 묻지 않아요. 모두 자신의 계급에서 잘 살고 있답니다."

각자 자기 계급에서 만족하고 사는데 굳이 남이 카스트에 개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인도에서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힌두 사원이다. 어디를 가든 풍악소리에 압도된다. '푸자'라는 제식도 자주 볼 수 있다. 푸자는 모든 힌두교 의식을 일컫는다. 제물을 바치고, 악기.율동을 더해 신성하게 거행하는 푸자에서 출신은 상관없어 보인다. 신 앞에선 모두가 평등한 것이리라.

그에게 종교의 뜻을 물었다. 그는 '숨 쉬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정의했다. 힌두교는 종교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인도인의 삶이자 마음이었다.

김나미 <작가.요가스라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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