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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일본영화 배울건 배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일본 감독 기타노 다케시 (北野武) 의 영화 '불꽃' 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 18편중 12번째로 상영됐다.

워낙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해 온 유명감독이어서 오후10시에 열린 시사회장은 만원을 이뤘고, 시사회가 끝나자 황금사자상의 향방은 이미 결정난 듯한 분위기였다.

죽어가는 아내와 하반신불수가 된 동료형사를 돌보기 위해 야쿠자의 돈을 빌려 쓴 전직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불꽃' 은 잔인한 폭력장면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영상과 진지한 인간 내면의 탐구가 가슴 찡한 여운을 남기는 수작이다.

기타노의 수상은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일본 영화가 황금종려상과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것과 함께 일본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로자와 아키라 (黑澤明) 로 대표되는 일본 영화는 60년대까지 세계 영화계를 지배했었지만 이후 긴 침묵에 빠져들었던 터다.

그런데 해외 영화제에서 일본 영화의 잇따른 수상을 지켜보는 일은 다른 나라 영화의 수상과 다른 묘한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왜일까. 그건 단순히 사촌이 땅을 샀기 때문에 오는 배아픔이라기보다 일본 영화가 오랫동안 금지돼 왔고, 그래서 너무나 일본 영화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영화의 개방을 주장해온 논리 중엔 우리 영화보다 못하기 때문에 별 '위협' 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이한 분석도 끼여있지 않은가.

하지만 오히려 일본 영화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개방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또 한동안 쇠퇴의 길을 걸었던 일본 영화가 어떤 노력을 통해 부활하게 됐는지를 연구하고 배우는 자세도 필요하다.

'세계가 인정하는 신세대 감독들 - 일본 영화 르네상스' 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뉴스위크 일본판 최근호는 제작비가 부족해 스펙터클 대작이 불가능한 젊은 감독들이 대신에 내면을 탐구하는 진지함으로 세계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논쟁은 여전히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이미 일본문화는 우리 문화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히려 음성적이기 때문에 폐해가 더 크다.

가요와 영화에서 심심찮게 표절시비가 일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금지대상' 에 대한 호기심에서 오는 과도기의 혼란을 감수하고라도 정정당당한 교류를 통해 정말 독창성과 실력을 갖춘 예술인만이 살아남는 풍토를 조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남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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