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국민응원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음악과 스포츠의 밀접한 관계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호이징가다.

신 (神) 은 슬픔과 고통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잠시 쉴 수 있게 하기 위해 축제의 시간을 갖도록 허용했고, 이때 인간이 끊임없이 기쁨의 소음을 내며 깡충깡충 뛰고 춤추는 행위가 음악과 스포츠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음악가를 뽑는 콩쿠르나 경연대회도 스포츠에서의 '힘겨루기' 이론을 도입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스포츠 자체를 음악의 소재로 삼은 작품들도 많다.

하이든.모차르트.슈베르트.멘델스존 등은 사냥을 주제로 한 음악을 작곡했고, 블리스는 올림픽을 주제로 한 3막 오페라 '올림픽 선수들' 을, 마르티누는 축구를 주제로 한 관현악곡 '하프 타임' 을 작곡했다.

이밖에 오네게르의 '교향적 운동' 제2번에는 '럭비' 라는 제목이 붙어있고, '복싱 매치' 라는 도사티의 오페라도 있다.

하지만 음악과 스포츠의 관계를 좀 더 실감있게 나타내는 대목은 대개의 스포츠가 율동과 리듬 등 음악성을 필요로 한다는 점일 것이다.

40년대 후반에 제작된 대니 케이 주연의 코미디영화 '미녀와 우유배달' 이 좋은 예다.

권투의 '권' 자도 모르는 주인공이 링에 올라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리듬에 맞춰 펀치를 날린 끝에 강자를 때려눕힌다는 황당한 이야기지만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상대방을 유린하던 무하마드 알리의 모습을 상기하면 이해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리듬 체조' 의 아름다운 율동을 감상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포츠에 있어서 음악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관전하는 사람들도 흥이 나면 저절로 어깨춤이나 콧노래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응원단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면 집단적인 율동과 노래로 발전한다.

88년 서울올림픽때 주제가였던 '손에 손잡고' 는 한국팀 응원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을 뿐 아니라 서울올림픽을 더욱 유명하게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국가차원의 응원가가 아직 없다.

정부가 월드컵등 대형 스포츠행사에서 온국민이 흥겹게 부를 수 있는 '국민응원가' 를 제정키로 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스포츠행사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흥을 돋울 수 있는 그런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