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무늬토기는 '빛살'로 표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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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떠오르는 것은 빗살무늬 토기다.

빗살무늬 토기 혹은 즐문 (櫛文) 토기가 농경사회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무늬 자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이렇다 할 연구가 없다.

무심코 지나친 이 무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이 무늬를 한국미술의 원형 (原形) 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문화운동이 일군의 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된 것. 국문학과 한문학을 전공하고 서예가로 활동중인 김양동 교수 (계명대.서예) 는 한국문화의 근원을 찾는 작업을 시도하고 몇몇 뜻을 같이한 학자들과 새로운 문화운동 모임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이애주 교수 (서울대.무용).정진규씨 (시인.현대시학 주간) 등이 참여하고 고고학.역사학.음악.미술등 각 분야로 공감대를 넓히려 하고 있다.

이들의 문제제기는 빗살무늬 토기의 선형 (線形) 무늬에서 시작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무늬는 머리빗 모양이 아니라 태양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따라서 '빗살무늬' 라고 부르지 말고 '빛살무늬' 라고 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기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양이다.

태양은 이들에게 신 (神) 으로 섬겨졌다.

그렇다면 신격화된 태양과 선형무늬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김교수는 이 질문에 문자학적 변천을 들어 설명한다.

한자 '신 (神)' 의 원형을 거슬러 올라가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그은 '│' 이 된다.

이 고본자 (古本字) 는 '아래위 통할 곤' 자이고 후한시대 허신 (許愼) 의 '설문해자 (說文解字)' 에 따르면 '위로 통할 신 (引而上行讀若)' 이었다.

즉 위에서 아래로 내려그은 이 상형문자가 태양을 상징하고 그 빛살을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이 무늬는 '인간이 남긴 최초의 언어' 로 그 내용은 배일사상 (拜日思想)에서 유래된 신 (빛살.햇살) 을 주술적 염원에서 새겨놓은 것으로 분석한다.

김교수는 "빛살무늬는 조형세계의 원초이며 한국서예 필획의 시초로 보아야 한다" 고 주장한다.

이들은 빛살.햇살에서 신에 대한 우리의 고유어의 도출도 시도한다.

하늘.땅.해.달.물.바람등 만물의 상징이 되는 것들에 대한 고유어는 있는데 신에 대한 고유어도 있었을 것이라는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빛살과 햇살에 붙어있는 '살' 의 고어는 '' 로 바로 이것이 '신' 에 대한 고유어라고 분석한다.

'' 은 지금에 와서 '살다' '사람' '나이 (살)' '솔.솔개.솟대' '수리 (우두머리)' 등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신과 신이 관장하는 모든 것이 나온다는 의미다.

이들의 주장은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다.

특히 고고학 분야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빗살무늬' 라는 용어를 바꿀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송의정 연구관은 "빗살무늬 토기인들에 대한 연구는 출토분포나 토기의 특징등에 대한 분석은 있었지만 아직 그 무늬의 상징성에 대한 연구는 확실한 증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이뤄지지 않고 있다" 며 "빗살무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하나의 아이디어로는 몰라도 빗살무늬 토기인들이 우리 민족의 원류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현단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빗살무늬' 라는 용어는 일본학자가 서양의 연구를 받아들이며 그대로 번역한 것이고 한국 고고학계가 아무런 비판없이 그대로 인용해 쓰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제라도 우리 나름의 연구를 시도해 우리의 뿌리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앞으로 고고학뿐만 아니라 문학.역사학.미술.무용.음악등 각 분야에서 뿌리에 대한 연구가 쏟아져 나오도록 촉구하는 것이 이 모임의 진정한 취지인지도 모른다.

이애주 교수는 "무용 분야에서 현존하는 역사자료로 파악될 수 있는 것중 가장 오래된 것이 고구려춤인 만큼 여기에 보이는 빛살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 이라며 "각 분야의 맥을 찾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고 말했다.

곽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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