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초반 맞는 옷이 없다 … 체격은 커졌는데 치수는 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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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어린이' 라고 하기엔 너무 커버렸고 '청소년' 이라고 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 요즘 11~13세 자녀를 둔 주부들은 아이들의 옷을 사입히는 일때문에 골머리를 앓고있다.

영양상태가 좋아져 나이답지 않게 (?) 부쩍 커버린 이 또래 아이들의 몸에 맞는 옷을 아동복 코너에선 좀처럼 찾기 힘들어진 것. 그렇다고 재단이며 디자인면에서 어린이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성인용 옷을 무작정 줄여 입히기도 곤란한 형편이다.

초등학교 6년생 아들을 둔 박연홍씨 (42.인천시부평구) .키 155㎝에 몸무게 55㎏로 조금 통통한 편인 아들 범수는 이미 아동복은 '졸업' 한지 오래다.

초등학교 고학년용이라 볼 수 있는 아동복의 13.15호 치수는 각각 가슴둘레 76㎝ - 키 155㎝,가슴둘레 82㎝ - 키 165㎝ 정도가 입을 수 있다고 라벨에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동복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이 치수의 옷은 종류가 몇가지 안된다는 게 문제. 또 13.15호 치수를 찾았다해도 범수처럼 살이 좀 붙은 체형은 도저히 작아서 입을 수가 없다.

요즘 아이들중 상당수가 적당히 살찐 체형이라는 점, 꽉 끼는 옷은 활동하기 불편해서 아이들이 기피한다는 점을 고려해 현재의 아동복 치수는 재고해 보아야한다는 게 박씨를 비롯한 주부들의 공통된 지적. 현재 아동복업체들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신체지수는 92년에 조사된 것으로 지난 5년새 우리 아이들의 키와 몸무게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전혀 반영이 안돼 있다.

국립기술품질원 (구 공업진흥청)에 따르면 올 연말께나 새로운 신체지수가 나올 예정이라고. 범수의 경우 할 수 없이 주로 고교생 이상을 대상으로 한 중저가 청바지.캐주얼 브랜드 옷중에서 제일 작은 치수를 사다가 길이를 줄여 입는다.

하지만 그렇게 길이와 어깨를 대충 맞춘다해도 동실동실한 어린이의 체형이 고려되지 않은 옷이라 남의 옷을 빌려다 입힌 듯 어색함을 감출 수가 없다.

게다가 스타일도 제 또래와 맞지 않아 늘 애어른 같은 느낌을 주는 점도 박씨의 불만사항. 딸을 둔 주부들도 불만이 만만찮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원피스나 앙증맞은 블라우스로 단정하면서도 귀여운 차림새가 가능했던 아이들이 일단 고학년에 접어들면 유니섹스풍이나 힙합풍으로 변신 (?) 할 수 밖에 없다.

아동복중에 맞는 옷이 없으니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년용 캐주얼.스포츠의류 코너에서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청바지를 사주는 것외에 도리가 없기 때문. 5학년생 딸이 있는 김영희씨 (38.서울서대문구홍은동) 는 "그나마 청소년용 옷중에도 작은 치수인 85.90은 찾기 힘들다" 면서 "95를 사다 입히면 키 160㎝에 40㎏인 딸아이는 쌀자루를 걸친 꼴이 되고 말지만 대안이 없다" 고 말한다. 실제로 이랜드.옴파로스.보이런던등 청소년용 브랜드들을 한데 모아놓은 그레이스백화점 영플라자의 경우 대안을 찾지못한 초등학생 손님들이 갈수록 늘어 최근엔 전체 고객의 15% 이상이 부모를 동반한 초등학생들이라고 조광현대리는 귀띔한다. 어린이들의 변화된 신체조건이 반영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것은 겉옷뿐아니라 속옷이나 신발류도 마찬가지. 13세 아들이 트렁크식 팬티를 원해 백화점엘 들렀다가 트렁크식이건 삼각팬티건 간에 90치수가 없어 헛걸음을 한 한경희씨 (40.서울강남구역삼동) 는 "울며 겨자먹기로 고무줄 밴드가 넓어 신축성이 커보이는 95치수의 삼각팬티를 사긴했지만 디자인이 성인용이어서 꺼림칙하다" 고 얘기한다.

또 남녀 할 것없이 '왕발이' 가 보편화되다보니 이 또래 아이들의 신발은 240~250㎜의 운동화로 통일돼 있다.

마땅한 아동화가 없다보니 운동화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위해선 초등학생이라도 굽이 낮은 어른용 구두를 골라 신길 수 밖에 없다는 게 엄마들의 하소연. 최근들어 속옷의 경우 거평패션.쌍방울등 일부 업체에서 초등학생용 브래지어를 내놓는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긴 하다.

하지만 업계의 커다란 인식변화가 없는 한 '몸에 옷을 맞추는' 게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는' 10대초반의 부자연스러운 옷입기는 계속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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