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후보간 정책대결 이용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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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30여년간의 경제발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우리 경제는 60년대말과 80년대말의 몇년을 제외하고는 늘 경제위기와 난국의 고통에 시달려 왔다.

90년대 초반에도 우리 경제가 벼랑에 서 있다거나 추락하고 있다는 위기론이 팽배했으며, 그후 경기회복으로 위기론은 잠잠해졌으나, 96년부터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재벌기업들의 도산에 이어 금융.외환위기가 가중되자 총체적인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극단적인 비관론마저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제1차 석유파동때 외환부족으로 나라 전체가 부도에 직면했던 위기나 80년대초 외채망국론마저 슬기롭게 극복했던 우리 경제가 왜 최근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인가를 물어보면 다수의 대답은 당면한 경제난이 그동안 계속 덮어둬 누적된 '구조적' 인 병폐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현상이기 때문에 그 성격이나 심도에 있어 과거의 그 어느 위기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요즘 논의되고 있는 구조적인 취약점들은 90년대초에도 제기됐던 문제점들이다.

남의 돈을 빌려 이 산업 저 산업 가릴 것 없이 사업을 벌여놓고는 문제가 생기면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는 대기업의 후진적 경영행태, 기업은 부실이 돼도 고용을 조정할 수 없는 노동시장의 경직성, 규제를 털어버리지 못하는 정부의 경직성, 사회간접자본의 부족, 금융의 낙후성 등이 우리 경제의 기반을 흔들어놓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대수술을 하지 않는한 경제 회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국내외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으나 정부는 국민의 신뢰 부족으로 구조조정을 위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영향력도 시간도 없으며, 더구나 시장 (市場) 의 자율화.개방으로 경제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해 정책부재 (不在) 의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물론 금융시장의 개방으로 재정.금융정책 효과가 약화되고 있으며, 이제는 세계무역기구 (WTO) 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금융.외환위기에 대처할 수단이나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정부는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의 선택으로서 자금을 풀고 환율의 평가도 절하해 어려운 기업들을 살리고 보는 경기부양정책과 부실기업및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시장원리에 따라 정리하는 정공법의 두 극단적인 대안을 고려할 수 있다.

경기부양정책은 정치적으로 무난한 대증요법은 될지 몰라도 과거와 달리 국제금융시장을 자극해 원화에 대한 투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이 있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반면 시장에 맡기는 정공법은 부실기업과 실업자를 양산하게 돼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안이다.

결국 이 두 대안 사이의 넓은 회색지대에서 정부는 어려운 기업을 지원도 하며 부분적으로 구조개혁도 추진하는 등 중도적인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도적인 정책은 개별산업과 기업의 지원 내지 구조조정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기아사태에서 보듯이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자연히 어느 대안을 선택하든 정부는 좌우양측으로부터 공격받는 등 여론수렴이 어려워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정부는 어떻게 이러한 딜레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선거운동기간중의 후보간 정책대결을 이용해야 한다.

대선은 정책선택에 대한 국민들의 합의와 정책의 추진력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각당의 대선후보들이 서로 다투어 난국 (難局) 해소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이중에서 가장 합리적이며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안을 선택해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책은 다음 정부도 승계할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나 국제금융시장에 대해 한국이 현재의 난국을 풀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대선후보들이 모두 득표에만 눈이 어두워 저마다 인기있는 정책만을 들고 나올텐데 어떻게 그들의 해법을 선택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만일 아직도 경제의 장래는 생각지 않고 인기에만 영합하는 후보가 있다면 그런 후보는 언론의 매서운 질타를 피하지 못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일반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이다.

<박영철 고려대 경제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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