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未婚총장 헌신의 4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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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달 28일 이화여대 경영관 홀에서는 이대에서 42년을 봉직하고 정년퇴직하는 윤후정 (尹厚淨) 명예총장의 정년퇴임및 출판기념회가 열려 소명 (召命) 을 알고 평생을 한길에 헌신한 사람의 삶이 주는 깊은 감동을 느끼게 했다.

이화여대 법학과 1회 졸업생으로 한국의 첫 여성 헌법학자인 그는 80년 제8차 개헌때 여성계의 요청으로 헌법개정 작업에 참여해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는 가정에서의 부부의 평등개념을 우리 헌법에 (36조) 반영시킨 당사자다.

함경남도 안변 태생으로 가난한 농군의 3남3녀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때 가족과 함께 월남한 후 고학하면서 학업을 닦아 오늘의 자신을 세운 입지전적인 삶을 살았다.

어린시절 불우한 여성을 돕기 위해 정치가를 꿈꾸기도 했던 그는 19세에 이화에 입학한 후 미국 예일대와 노스 웨스턴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끝낸 7년간의 유학생활을 빼고는 잠시도 이화를 떠나본 적이 없었다.

한국 여성교육의 요람 이화의 1백11년 역사는 설립자 매리 스크랜턴을 제외한 역대 학당장.교장.총장 모두 10명이 미혼으로 한평생을 이화에 헌신한 여성들에 의해 이뤄졌다.

尹명예총장은 해방후 김활란 (金活蘭) 박사를 시작으로 김옥길 (金玉吉).정의숙 (鄭義淑) 씨에 이어 '독신의 헌신' 으로 상징되는 총장군의 마지막 주자 (走者) 였다.

96년 그의 후계자가 된 장상 (張裳) 총장은 기혼이다.

역대 미혼 지도자들은 그들의 능력과 스타일을 비판받을 수는 있어도 그들이 사심 (私心) 없이 자신의 생을 이화에 헌신했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그의 퇴임은 절대 군주시대의 왕권과 비슷한 경로로 일찍이 총장감으로 간택되고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로 키워진 마지막 총장의 퇴장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제 이화는 뛰어난 소수의 지도자가 이끄는 학교가 아니라 합리적인 경영능력을 갖춘 총장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조직의 힘으로 움직이는 학교로 탈바꿈하는 전환기에 있다.

민주적인 선거방식에 의해 6년단임의 총장을 선출토록 된 것이다.

기독교 정신으로 서양 선교사가 길가에 버려진 여자아이들을 데려다 키우고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해 오늘날에는 재학생 1만6천여명을 헤아리는 세계 최대의 여자대학으로 성장한 이화가 급변의 시대 21세기를 맞아 어떻게 변모해갈지에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금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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