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생 로랑 소장품 경매 총 7290억원에 낙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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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제2차 아편전쟁(1856~60년) 때 프랑스로 유출된 청나라 원명원(圓明園·황실 여름 별장)의 유물이 결국 경매에서 고가에 팔리자 중국 정부와 중국인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세계적 경매업체 크리스티가 25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주최한 경매에서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1936~2008년)의 소장품인 원명원의 사람 얼굴 크기만한 쥐와 토끼 머리 청동상이 각각 1400만 유로(약 270억원)에 낙찰됐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경매 시작 10여 분 만에 전화로 경매에 참가한 사람이 개시 가격인 1000만 유로보다 400만 유로 더 많은 금액에 낙찰받았다고 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국가문물국은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경매의 책임은 전적으로 경매 주관업체인 크리스티에 있다”며 “약탈한 문화재를 경매 처분한 비상식적인 행동이 중국인의 문화적 권리와 민족 감정을 손상시켰다”고 비판했다. 또 “이번 경매는 유출된 문화재를 원래 소유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에 위배된다”며 “불법적으로 빼앗긴 중국 문화재를 되찾는 노력을 적극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네티즌은 거친 용어를 사용하며 크리스티와 프랑스 정부 등을 대대적으로 성토했다. 프랑스 제품 불매운동 주장도 제기됐다. 한 네티즌은 “약탈해 간 문화재를 경매로 팔아먹는 것은 강도의 논리와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쥐와 토끼 머리 동상이 눈물을 흘리면서 “집으로 가고 싶다(我想回家)”고 말하는 삽화를 보도했다.

크리스티 입장에서는 13억 중국인의 관심을 촉발시켜 경제위기 와중에도 전례 없는 흥행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장자의 명성, 작품 가치, 경매 규모, 외교 분쟁에 준하는 문화재 환수 논란 등 흥행 요소를 고루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미술계에서는 앞으로 크리스티의 경매 활동이 중국과 중화권에서 상당한 견제를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설적인 디자이너였던 이브 생 로랑은 이번 경매를 계기로 ‘전설의 컬렉터’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그의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주(78)와 함께 소장해 온 예술품 700여 점이 사흘간 진행된 경매에서 새 주인을 찾았다. 낙찰 총액은 3억7350만 유로(약 7290억원). 첫날 ‘인상파와 근대미술’ 관련 작품 경매 규모만 2억620만 유로(약 3980억원)였다. 유럽 경매에서 하루에 거래된 최고 액수인 동시에 단일 컬렉션 경매 사상 최고 액수 기록을 세웠다.

특히 앙리 마티스의 유화 ‘푸른색과 핑크빛 양탄자 위의 꽃병’은 3590만 유로(약 693억원)에 팔려 마티스 작품 중 최고가, 이번 경매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이날 두 시간여 경매에서 세계 신기록 7개가 나왔다. 가구 경매에서는 가구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의 안락의자 ‘용(龍)’이 2190만 유로(약 422억원)에 팔려 20세기 가구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 치웠다. 경매 프리뷰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뿐 아니라 미국·일본 등지에서 3만여 명이 운집했을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이번 경매의 수익금은 에이즈 연구재단에 기부된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서울=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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