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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의 나토 재가입 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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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프랑스가 조만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재가입을 공식 발표할 전망이다.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 국방 주권을 내세워 1966년 나토 탈퇴를 결행한 지 40여년 만의 복귀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7년 5월 취임 이후 나토 재가입을 추진해 왔다. 프랑스 여론도 요즘은 우호적 분위기다. 그렇다고 쟁점이 사라진 건 아니다. 나토 재가입으로 프랑스의 전통적인 독자 외교노선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던 프랑스의 전략적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드골 노선을 계승한다는 사르코지가 나토 재가입을 밀어붙이는 게 모순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르코지는 운이 좋은 편이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과 달리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쏟아 상당한 성과를 냈다. 나토 재가입도 이런 흐름의 일환이다. 물론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미국의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프랑스의 외교적 입지를 지지한다. 프랑스는 그동안 나토에 공식 가입하지 않은 채 나토의 주요 활동에 참여하며 미국에 할 말을 하는 국가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며 프랑스의 나토 재가입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긴 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중 93%가 오바마의 당선을 지지했다. 어차피 사르코지는 오바마 당선 여부와 관계 없이 나토 재가입을 추진했겠지만 말이다. 반면 프랑스 의회는 사르코지의 나토 재가입 추진에 그다지 찬동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나토 재가입에 우호적인 민심에 힘입어 사르코지는 의회를 설득하기 쉬워졌다. 나토가 4월에 60주년을 맞는 것도 프랑스의 재가입을 부추기는 요소다.

이와 관련, 우리는 현실과 상징을 구분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프랑스가 나토의 대부분 군사·민간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프랑스가 참여하지 않는 분야는 나토 내 핵무기 보유국 그룹과 국방계획위원회뿐이다. 따라서 프랑스가 재가입한다 해서 나토의 본질적 변화를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상징이 중요하다. 사르코지가 나토 재가입을 중요한 문제로 거론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다른 나라들은 나토 재가입을 프랑스 외교정책의 극적인 변화로 여긴다. 프랑스가 예외적인 나라로 인식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보는 것이다. 당연히 미국은 이 같은 프랑스의 변화를 가장 열렬히 환영할 것이다. 반미주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셈이니 말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변화에 환영의 뜻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나토 재가입이 미국이 결정한 전쟁에 자동으로 참전한다거나 미국식 질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독일의 경우 나토 가맹국이지만 2003년 이라크전쟁 참전을 거부하고 전쟁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나토 재가입이 유럽 중심의 방위 축을 건설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바마가 전임자 부시에 비해 유럽 중심의 방위 축 건설에 우호적일지는 미지수다. 현재의 경제위기와 부시 정권이 야기한 전략적 난국이 유럽연합(EU)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도 가늠하기 힘들다. 사르코지의 주장대로 유럽 중심의 방위 축을 만드는 데 진전을 이룬다면 그의 도박은 성공하는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토 재가입은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다.

현재 나토의 미래를 놓고 논의가 한창이다. 부시 정권은 나토를 지구촌 경찰과 테러 척결 기구로 만들려 했다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그렇지만 나토의 임무는 무엇이고, 나토가 어느 지역의 분쟁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논의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하다.

파스칼 보니파스 국제관계전략문제연구소장
정리=정재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