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업들 실속형 접대 묘안 백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현대그룹의 주력기업 사장인 P씨는 요즘 주요 외부인사들과 일식집에서 오찬을 할 경우 탕이나 구이 정도만 주문한다.

예전에는 생선회 한 접시를 시켜 먹은 뒤 이들 음식을 주문했지만 경비절감 차원에서 바로 식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P사장이 술자리로 이어지는 저녁보다 점심자리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처럼 국내기업들의 접대스타일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회사 돈이니 써도 된다" 며 흥청망청대던 관행에서 탈피해 돈과 시간을 절약하며 접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갖가지 '실속형 접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것이다.

종합상사인 S업체는 최근 거래업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접대에 예전과는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초청인사들이 즐기는 취미나 오락에 맞춰 같이 어울리는 것으로 접대를 대신한다.

등산과 볼링등을 즐긴 후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하는 것이다.

때로는 가족끼리 유원지를 찾기도 한다.

설사 불가피한 술자리가 생기더라도 고급 룸살롱에서 단란주점으로 단가를 낮추고 해물탕집.전통한식집등 전문식당가를 자주 찾는다.

저녁과 함께 간단한 술을 곁들이는 수준이며 흥이 오르더라도 2차는 안 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간부직원들은 30만원 이상의 접대비는 반드시 사전에 재가를 받는다.

또 직급별로 접대하는 일을 대폭 줄이고 있다.

중복접대를 피하기 위해서다.

접대받는 사람이 "과용하신 것 아닙니까" 하면 "회사돈인데 뭘 그러느냐" 고 답하던 관행은 이미 깨진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물론 기업들이 불요불급한 경비의 절감을 위해 접대비를 크게 줄인데 기인한다.

현대.삼성.대우.LG등 주요그룹들은 올 접대비를 지난해보다 각각 10~30% 가량 삭감했다.

이에 따라 임직원들의 씀씀이가 예전만 못해 접대횟수나 규모를 크게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대우는 지난해부터 접대비를 매년 10%씩 줄여 2000년까지 접대비를 95년의 절반수준으로 끌어내릴 계획이다.

LG정유는 최근 '윤리강령' 까지 만들어 룸살롱등에서 접대할 수 없도록 명문화했다.

접대받는 사람들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추세로 바뀌고 있는 데다 기업들의 사정을 고려해 무리한 향응을 요구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우나에서 땀을 흘린 후 간단히 맥주를 마시거나 바둑을 두며 상호간 우의를 다지는 접대방식이 부쩍 늘고 있다.

또 골프를 치더라도 티업 (시작) 시간대를 조정해 저녁시간 전에 라운딩을 끝내는 이른바 '시간차 골프접대' 를 한다.

저녁까지 계속되면 술자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대우경제연구소가 최근 상장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접대비 증가율추세를 보면 올 상반기의 접대비 증가율은 지난 10년 이래 처음 감소했다.

중견그룹 사정은 더욱 빡빡해졌다.

수산중공업 박주탁 (朴柱鐸) 회장은 "임직원을 줄이는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서는 판에 접대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며 "식사시간대에 회사로 찾아오는 손님은 회사 인근의 단골식당에서 대접하고 있다" 고 말한다.

거평그룹 임원들도 그룹방침에 따라 의례적 접대를 크게 줄이고 있으며 올 추석선물도 꼭 필요한 거래처에만 계열회사의 의류제품으로 할 계획이다.

이밖에 대우.대림.코오롱산중공업 박주탁 (朴柱鐸) 회장은 "임직원을 줄이는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서는 판에 접대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며 "식사시간대에 회사로 찾아오는 손님은 회사 인근의 단골식당에서 대접하고 있다" 고 말한다.

거평그룹 임원들도 그룹방침에 따라 의례적 접대를 크게 줄이고 있으며 올 추석선물도 꼭 필요한 거래처에만 계열회사의 의류제품으로 할 계획이다.

이밖에 대우.대림.코오롱그룹등은 올 추석기간중 '선물 안주고 안받기운동' 을 전개하는등 어느때보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한편 재계는 물가인상과 과소비를 부추기는 접대비를 점차 줄여 나가야 한다는데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당국이 1인당 접대비 한도를 구체적으로 정하는등 미주알고주알 간섭하는데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대우그룹 임원은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접대비 손비한도를 낮추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더라도 1인당 접대한도액과 접대업종을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 이라고 말했다.

고윤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